[염무웅] 희망이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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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13 14:52 조회20,1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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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은 지난 연말 간행된 김승희 시인의 시집에서 빌려온 것이다. 표제작 <희망이 외롭다>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는 먼 불빛에 의지하여 캄캄한 벌판길을 더듬어 나가는 자의 처연한 심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래전 만해 스님은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것이 식민지시대의 부자유에 대한 절실한 반어였음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오늘 김승희는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라고 말을 꺼낸다. 이 시가 깊은 울림을 발하는 것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 수행한 치열한 고뇌가 행간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파멸의 순간에도 언어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라면 희망은 차라리 ‘종신형’이라고 시는 말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가 암울하게 울릴수록 새벽의 예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종종 누군가의 형벌을 통해서만 다른 누군가의 구원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얘기하려는 ‘외로운 희망’은 김승희 시인의 그것만큼 깊은 차원까지 못 가는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저마다 큰 불안에 떨며 지냈다. 잊고 지낸 전쟁의 공포를 그처럼 구체적으로 실감한 적이 없었다. 남쪽 방송에 거두절미 옮겨졌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북한 아나운서들의 공격적인 어조와 호전적인 언사는 무슨 사달이 금방 터질 것 같은 급박함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것은 북한 당국자들의 거친 말투였다. 자신들의 ‘최고 존엄’에 대해서는 추호의 무례함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막말 욕설을 퍼붓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름 뒤에 ‘주석’ ‘위원장’ 같은 호칭을 빼놓지 않음으로써 남쪽 당국은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옛말의 옳음을 입증했다.
물론 문제는 남북이 주고받는 언어의 허장성세가 아니라 그 이면에서 요동치는 실체적 위험들이다. 억지력 대 억지력, 전쟁연습 대 전쟁연습의 양보 없는 대결이 지속되는 가운데 안타깝게도 유일하게 남아 있던 평화의 담보마저 기약 없이 폐쇄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이루어졌으므로, 그가 미국에서 위기타개의 이니셔티브를 행사하기 바란 것은 모든 한반도 주민들의 공통된 염원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린 남북관계를 박 대통령이 복원할지 모른다고 기대한 것은 실상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선거과정에서 기존 남북합의의 이행 여부에 확답을 피하기는 했지만, “남북이 과거에 합의한 약속은 존중되고 준수되어야 한다”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을 거론한 통일부 장관의 취임사가 대통령의 동의 없이 나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표면상 모든 기대는 무산되었다. 내가 보기에 한·미 양국 대통령이 발표한 합의의 핵심은 2009년 오바마-이명박 사이에 채택된 ‘한-미 동맹 공동비전’을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선언’의 이름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두 문건을 꿰뚫고 있는 핵심 중의 핵심은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내용이다. 까놓고 말하면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한민국 체제 안에 유혈사태 없이 통합하겠다는 의사를 공표한 것으로, 1972년 7·4공동성명 이래 남북이 가까스로 이룩한 공존의 원칙을 폐기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북한이 국호에 걸맞은 나라, 곧 민주주의 국가도 인민공화국도 아니라는 데 나는 주저 없이 동의하겠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국가보안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국호에 상당히 근접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이 순수한 이론적 문제로 제기되었다면 나는 흡수통일에 반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1950년 이래 현실은 전쟁의 지뢰밭을 통과하지 않고 통일에 이르는 길은 없음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조건에서 평화와 통일은 양립 불가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미 동맹 공동비전’의 해당 조항을 철회하고 6·15공동선언의 합의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외로운 희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한겨레, 201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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