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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운] 분단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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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21 15:18 조회35,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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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연세대학 국학연구원에서 ‘감독 초청 오픈 토크’가 있었다. ‘동아시아 공통감각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주제로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강 감독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한국영화계의 거두다. 그런데 그의 근작, 그것도 한·중·일 톱스타를 모아 역대 최대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마이웨이’의 흥행성적이 예상외로 저조했다. 자연스럽게(?) ‘마이웨이’가 왜 실패했는지로 방향이 흘러간 그날의 토론은 오히려 흥행에 성공했더라면 갖지 못했을 특별한 사색의 자리였다.

영화계에서 비호감 장르로 치부되는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의 시대를 연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실 이 영화의 성공은 전쟁영화라기보다 ‘쉬리’부터 ‘공동경비구역’ ‘적과의 동침’ ‘고지전’ 등 일련의 성공한 분단영화의 맥락에서 보는 것이 옳다. 다른 전쟁영화와 달리 현실에 존재하는 남북의 대치 상황이 전쟁을 나와 무관한 사건이 아닌 바로 지금 내 옆의 문제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 중요한 것이 ‘적=동포’라는 코드다. 함께 백석의 ‘나타샤’를 읊고 ‘전선야곡’을 부르며 애상을 공유하는 형제 또는 애인이라는 코드가 스펙터클한 효과와 성공적으로 결합한 것이 ‘태극기 휘날리며’였다.

‘마이웨이’ 흥행실패의 시사점

그런데 그 형제애가 ‘마이웨이’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간혹 촘촘하지 못한 플롯이 걸리긴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뼛속 깊은 적의를 화해로 반전시키는 이 영화는 결코 졸작이 아니다. 그러나 이 화해의 서사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지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한 분단 영화들이 성공했던, 적대성을 비극의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완고한 벽에 부딪힌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분단의 감수성을 생각해 본다. 분단을 비극으로 느끼는 우리의 실감이 전쟁에 대한, 나아가 세상의 모든 적대성에 대한 보편적 의심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한반도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왜일까. 적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전쟁의 근원적 비극성은 그 적이 오로지 나와 같은 민족일 때만 기능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웨이’ 실패의 주요한 원인으로 타깃의 불명확함을 지적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즉 ‘태극기 휘날리며’에 숨겨진 민족주의 코드를 ‘마이웨이’가 무국적성으로 해체하는 지점에서, 전쟁의 적은 전쟁이라는 영화의 반전(反戰) 메시지는 공감의 반경을 벗어난다.

전쟁 비극 공유하는 날이 오길

정전 60주년을 맞은 올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기념식들이 준비 중이다. 남북한이 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중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60주년 기념 행보가 눈의 띈다. 항일전쟁, 국공내전과 함께 항미원조전쟁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초석이다. ‘미제국주의를 타도하는 의전(義戰)’이라는 기존 서사가 지탱하기 어려워진 지금, 국가 공식 집계 60만의 사상자를 낸 이 전쟁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공식적으로 상영된 적이 없음에도 중국에서 한국영화 하면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릴 정도로 한국의 분단영화가 호소력을 갖는 데는 어쩌면 위대한 중화민족 정신이라는 국가서사에 억눌린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무의식이 작용하는지 모른다.

비호감 장르라지만 전쟁은 수많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았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나와 무관한 전쟁 속에서 나를 발견케 한다. 우리의 분단 또한 이래야 하지 않을까. 인류 보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족이라는 감상의 경계를 넘어 전쟁의 비극성을 타자와 공유하는 공동의 사유의 장이 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국민일보, 201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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