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광주에서 시작되는 ‘제2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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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24 15:52 조회30,6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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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광주에서 ‘제2의 민주화운동’이 시작된다. 다행히(?) 거리운동은 아니고 학술운동이다. 비례대표제포럼은 그간 여러차례 정치개혁 관련 토론회를 열어왔는데, 이번엔 그 행사를 5·18기념재단 등의 후원에 힘입어 광주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것이다. 형식은 지난 2월 서울 홍대 앞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열었던 제4회 비례대표제포럼과 동일하다(경향신문 2월22일자 정동칼럼 참조). 이번엔 20명의 장년들이 멘토 역할을 맡겠다고 나서주었다. 대다수가 서울지역 거주자인 그들은 이 광주 행사를 기차로 다녀오려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을 내놓아야 한다. 광주에서 희망의 실마리라도 찾아보려는 것일까? 누구보다 바쁠 그들이 그 금쪽같은 시간을 쾌척하겠다니 말이다.
광주회의에 ‘제2 민주화운동의 시작’이라고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거기서 다루는 주제가 ‘87년 민주주의 체제’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 방안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포럼은 그 새 체제가 이른바 ‘합의제 민주주의 체제’이길 바라고 있다. 현행 87년 체제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역시 단순다수제 대통령 선거제도를 그 기초로 삼고 있는 ‘승자독식 민주주의 체제’다. 이 선거에선 득표율 50%를 넘길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단순히’ 1등만 하면 지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회의원이 되고, 온 나라를 대표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1등이 된 후보에게 던진 표 외에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된다. 무수한 유권자들의 표심이 간단히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직자 선출 과정을 두고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가 이루어지길 기대하긴 어렵다.
이 선거제도는 또한 거대 양당 중심의 ‘복점’(複占, duopoly) 정당체제를 촉진한다. 총선이 거듭될수록 지역구 1등을 양산해낼 수 있는 인적, 물적, 지역적 자산이 풍부한 거대 정당들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군소정당들은 탈락하게 되어 종국엔 총선이 양 진영으로 나뉘어 각 진영의 대표 정당들 간에 벌어지는 양자경쟁 구도로 고착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이 선거제도가 고질적인 지역주의와 결합함으로써 지역기반이 든든한 거대 양당에 과도한 기득권을 부여한다. 그렇게 형성된 지역 중심의 양대정당 기득권 체제에선 계층이나 기능적 이익집단들을 위한 정치적 대표성이 보장되지 않고, 따라서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과 선호가 정치과정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역시 민의 반영에 무능한 정치체제의 문제이다.
실질적인 양당제이다 보니 행정부는 둘 중 어느 한 정당만으로 구성된다. 소위 단독정당정부인 것이다. 게다가 그 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을 수반으로 모신다. 그러니 국정운영에서 야당(세력들)과의 협조는 불필요한 일이다. 대통령과 여당에 의한 독주와 독선이 민심을 개의치 않고 쉽사리 자행되는 이유다.
20 대 80이든 1 대 99든 사회구성원들의 압도적 다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그런데 단순다수제, 지역기반 양당제, 제왕적 대통령제로 요약되는 87년 체제에선 이 다수 시민들의 기능적 혹은 계층적 이해관계가 정치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확대와 심화일로에 있는 양극화의 핵심 원인이다. 이제라도 정치적 대표성의 보장을 전제로 하는 민의 반영 정치가 시작돼야 한다. 그것은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로 이념과 정책 중심의 다당제를 구축하고, 사회의 다양한 이익집단들을 대표하는 복수의 유력 정당들이 연립정부에서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책을 결정해내는 합의제 민주주의로 근접해갈 때 가능한 일이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의 주체는 청년들이었다. 1987년 6월의 민주화 쟁취는 그로부터 7년 후의 일이다. 80년의 광주에서부터 치자면, 87년 체제는 결국 7년 걸려 수립한 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2013년 6월 광주에서부터 시작될 제2의 민주화운동이 7년 후에는 과연 ‘2020년 합의제 민주주의 체제’로 귀결될 수 있을까? 우리 청년들에게 달린 문제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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