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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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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7-05 16:07 조회23,5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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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학장이 되었다니까 친구가 축하 대신 “사양산업 중소기업의 중간관리자가 됐네” 그런다. 요즘 많은 대학과 교수의 처지가 이렇다. 사양산업엔 늘 구조조정이 따라붙는다. 이 구조조정의 주역은 재정지원이라는 칼이나 다름없는 당근을 휘두르는 선무당, 교육부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재정지원이라는 당근이 진리를 생산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황우석씨는 노벨상을 탔을 것이다. 물론 재정지원을 많이 받은 대학은 그것에 감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증명 가능한 논거를 가지고 그것을 치하할 수는 없다. 역으로 재정지원을 적게 받는 대학과 교수는 교육부에 분개하고 제 처지에 낙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식 생산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교육부 식으로 하면 지표는 개선된다. 하지만 지표 개선이 내부 구조의 개선인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내부 기능의 교란이 일어난다. 예컨대 졸업생 취업률과 재정지원을 연계하면 대학은 우선 기존 조교를 해임하고 신규 졸업생을 조교로 고용한다. 그렇게 하면 취업률 지표가 좋아진다. 하지만 고용된 사람 수는 변함없고, 매년 전원 신참 조교로만 채워지는 대학 행정 역량은 퇴조한다. 그래도 이런 시도는 합법적 범위에 든다. 어떤 대학은 기업들과 공모해서 허위 취업실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짓은 파렴치한 것인가? 파렴치하고 징계도 해야 마땅하다. 그래도 내겐 동정심이 앞선다.


많은 대학들이 상대평가제를 도입했다. 그것이 대학평가 항목에 들어 있고 평가는 재정지원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서울대나 서강대 등이 상대평가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 서울대가 도입하려는 것은 유동적 상대평가제인데, 현재 학점 비율이 너무 경직적이어서 교수에게 재량권을 주자는 것이 그 취지이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대립을 엄격한 상대평가와 유동적 상대평가라는 구별로 대치하는 꽤 멋진 ‘꼼수’인데, 상대평가제라는 말을 아예 내려놓는 것을 겁내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그래도 나는 그 취지에 찬성한다. 대학 학점은 일정 기준을 성취한 것에 대한 평가이지 우연히 이합집산된 특정 강좌 수강생 내에서 등수를 매기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더 당혹스런 것은 대학과 정반대로 중등교육은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이 예고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특성화고부터 절대평가제가 도입된다. 두 가지가 흥미롭다. 하나는 특성화 고등학교와 대학은 모두 종국교육, 그러니까 취업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교육을 지향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한쪽에는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고, 다른 쪽에는 상대평가제를 강권해온 셈이다. 이런 어긋남은 도대체 어떤 교육철학에 기초한 것일까?

다른 하나는 특성화고‘부터’라는 점이다. 즉 전체 고등학교가 절대평가로의 이행을 예비하고 있다. 이런 이행의 추진력은 특목고로부터 오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내신 상대평가 때문에 가장 불이익을 보고 있고 그것에 저항해온 집단이 특목고이기 때문이다. 너무 무리한 추정인가? 글쎄…. 이미 중앙정부 고위 관료 가운데 상당수가 특목고 출신이거나 특목고 학부모이거나 그도 아니면 친척 가운데 몇몇은 특목고와 연관된 사람이 된 세상이다. 이 구조적 상황이 교육부 정책의 배경요인이라는 추정이 그렇게 개연성 없는 것은 아니며, 이 추정이 맞든 틀리든 교육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재정지원이 교육개혁이 아니라 지표개선에 머무르며, 그 대가로 내부 기능의 교란을 부르는 경우는 이외에도 허다하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이라는 당근을 휘두르지만,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아니, 모르기를 바란다. 안다면 사악하기조차 한 것이니까.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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