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청년과 장년, 희망으로 하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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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22 14:08 조회19,9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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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오후 홍대 앞. 장년 33명이 모였다. 아마도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는 분들일 터인데, 오직 청년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오후 한나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았다. 그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기리고자 이 지면에 그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다. 고원, 김민영, 김상조, 김영태, 김진업, 김창남, 노회찬, 박경태, 서해성, 선학태, 우석훈, 유종일, 윤여준, 윤원일, 이동걸, 이부영, 이상구, 이상이, 이수봉, 이수호, 이언주, 이종걸, 이창곤, 이철희, 전민용, 전성인, 정동영, 정해구, 조국, 조성복, 최재천, 하승수 등이다. 이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청년들이 겪었을 좌절감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딱히 해줄 건 없지만 그저 청년들을 만나 위로와 희망의 말을 건네주길 원했다. 그래서 ‘비례대표제 포럼’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그곳에 모두 모였다.
청년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광고를 대단하게 한 것도 아닌데, 무려 169명의 청년들이 포럼 소식을 듣고 몰려왔다. 그중의 35명은 자원봉사자로 나서 행사진행을 주도했다. 1부 ‘청년이 묻고 장년이 답하기’에선 청년 대표들이 자신들의 답답함과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장년들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정치가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을 장년 대표들의 긴 답변 시간 내내 청년들은 의외로(?)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집중했다. 모두가 숨죽여 경청했다.
그러한 태도는 2부로 이어졌다. 5명의 학자들이 비례대표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정책과 가치 중심의 온건다당제와 합의제민주주의를 견인해내며,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발전은 왜 그러한 새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지 등을 설명할 때 청년들은 그 강의에 몰두했다. 그들의 눈은 반짝였고, 입은 앙다물어졌다. 어떻게 든 정치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3부에서 마침내 장년들과 하나가 됐다. ‘더숲트리오’의 노래를 함께 듣고 부르며 그들은 장년들과 사랑을 나누는 듯했고, 장년들과의 동질감을 만끽하는 듯했다. 3부가 끝나고 그들은 바로 전날 대법원의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을 일으켜 세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자신들이 받은 위로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장년세대를 위로해주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감동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인 4부 ‘멘토와의 커피 정담(政談)’이 시작됐다. 약 5명의 청년들이 한 사람의 장년을 멘토로 삼아 ‘개인과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법으로서의 정치’를 은밀하게 논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짧은 정담이었지만 이미 하나가 된 장년과 청년은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년들로부터 “꿈을 꾸고 싶은데 그래도 되는지 고민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꿈 따위는 잊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지…”, “선생님은 젊은 시절 먹고사는 문제와 꿈을 어떻게 조화시켰나?”, “청년이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정치가 바뀌면 그게 가능할까?”라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장년들은 “저주받은 세대가 되게 해서 미안하다”, “여러분의 인생은 앞으로 지뢰밭일 거다. 미안하다”, “그래도 청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 자체가 정치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라는 등 그저 미안해하거나 어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답변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그래도 청년들은 기뻐했다. 하나가 된 장년들을 신뢰했다. 오히려 새 민주주의에서 새 희망을 품자고 말하는 쪽은 청년들이었다. 비례대표제 강화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개혁효과에 대해 그들은 쉽고 빠르게 이해했다.
민주주의는 본디 약자를 위해 존재하며, 따라서 더 좋은 민주주의는 약자의 선호와 이익을 더 잘 대표하는 제도 패키지를 필요로 하는바, 그 핵심이 바로 비례대표제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는 듯했다. 그리고 4월 중순 광주에서 이 같은 모임이 다시 열린다는 공지에 환호했다. 희망은 이미 싹 텄다. 새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경향신문, 201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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