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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이토록 '순수한' 나, 가장 위험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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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25 15:01 조회20,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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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롤로 메이의 <권력과 거짓순수>

어째서 사람은 종종 공격적인 성향을 표출하는 것일까. 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휘두를까. 인권유린과 반인도적 행동은 도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통념적 서사에 따르면 공격성과 폭력은 인간의 지배욕과 권력욕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타인을 억누르고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려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힘센 악당이 착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만악의 근원인 셈이다.


이런 유의 설명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지적으로 큰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롤로 메이 (1909~1994)의 <권력과 거짓순수: 폭력의 원인에 대한 탐구>(이하 '권력과 거짓순수')(신장근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는 이 같은 안일한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약한 존재가 폭력을 낳기 쉽다'는 것이다. 심리분석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심오한 함의를 갖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메이는 무기력, 무력감, 나약함이 공격성과 폭력을 초래하는 근본원인이라고 본다. 무기력이나 나약함과 같은 수동성, 그리고 광기 사이에는 모순적 연관성이 있다. 이렇게 뒤집어 보면 권력은 오히려 폭력을 방지하는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권력을 갈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자기성취 욕구와 자기실현 욕구는 결국 권력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흔히 오해되곤 하지만 니체가 '권력 의지' 선언에서 말했던 권력은 이런 종류의 권력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권력 추구는 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이것이 막히거나 왜곡될 때 인간은 반발하고 공격적이 되고 심한 경우 폭력까지 쓰게 된다.


▲ <권력과 거짓순수>(롤로 메이 지음, 신장근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문예출판사


인간의 권력 추구를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은 권력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끔 하는 내적·외적 조건이다. 권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므로 그 반대인 순수함을 추구해야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순수'라는 상태는 인간이 지어낸 망상에 불과하다. 무기력과 나약함을 포장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런 따위의 순수란 '거짓순수' (pseudoinnocence)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 온전히 순진하고 깨끗한 심성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유치한 허상이라는 말이다.


권력에도 단계가 있다. 첫째, '존재하기 위한 권력'은 신생아에게서 발견되는 원초적 권력이다. 둘째, '자기긍정'이 있다. 인정에 대한 요구가 자기긍정의 핵심이며 자기긍정이 인간 존엄의 기반이 된다. 셋째, '자기주장'의 단계가 있다. 자기긍정을 저지당할 때 드러나는 반응이다. 넷째, 위의 단계들이 억압되면 '공격성'으로 발전한다. 타인의 권력 영역에 들어가 자기주장을 하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추론과 설득의 모든 단계들이 억압될 때 터져 나오는 '폭력'의 단계가 있다.


이 모든 단계마다 그것이 억압되고 저지당할 때 신경증, 정신병, 심리적 폭발이 발생한다. 요컨대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런 권력 추구가 가로막힐 때 권력은 더욱 격한 양상을 띠며 발현된다. 인간의 권력 추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순수'라는 허위관념으로 왜곡할 때 결과적으로 더 많은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순수하다는 허위의식을 갖게 되면, '내'가 지닌 권력의지를 '너'에게 투사하여 '너'를 더러운 존재로 규정하게 된다. 또한 '나'는 권력을 추구하지 못한 상실감과 불만족을 보상받기 위해 더 심한 반응을 통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

이런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인간의 권력 욕구를 인정하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권력도 권력 나름이다. 여기서 롤로 메이는 권력을 그 속성으로 분류한다.

'착취적 권력'은 인간을 파괴하는 나쁜 권력이다. 노예제도를 기억하면 되겠다. '조작적 권력'은 타인을 조정하고 지배하는 권력이다. 부정직한 사기꾼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들 수 있다. 히틀러도 조작적 권력을 통해 불안정한 독일국민을 지배했다.


'경쟁적 권력'은 타인에게 대항하는 권력이다. 파괴적인 경쟁도 있고 건설적인 경쟁도 있다. 예를 들어 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이라는 경쟁을 할 수도 있지만, 스포츠 경기를 통해 건전한 경쟁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경쟁이 잠재적 능력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자양적 권력'은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것과 같이 타인을 위하는 권력이다. '통합적 권력'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권력이다. 나의 권력이 이웃의 권력과 교호하면서 제3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권력이다. 일종의 변증법적 권력, 비폭력의 힘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위의 권력 형태들을 얼마간 다 지니고 있다. 문제는 착취적-조작적 권력은 지양하되, 경쟁적-자양적-통합적 권력을 어떻게 배합하고 선용하여 건설적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서 건설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기력에서 비롯된 병적인 공격성과 폭력발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라는 거짓의 베일을 벗어던지고 건강한 권력에 기반을 둔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이다.


이쯤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착함' 이데올로기를 분석해 보아야 하겠다. 도대체 '착하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를 의미한다면 좋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착하다'는 게 순하고 여리고 고분고분하고 복종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그런 상태를 '좋은 것'이라고 전 사회가 장려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격성과 폭력을 양산하기 딱 좋은 사회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권력 추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정치적 권력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그것이 비난하는 대상인 공격성과 폭력을 외려 증가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권력과 거짓순수>는 미국에서 임상심리학 분야의 박사 1호를 기록했던 롤로 메이의 오랜 경험이 녹아있는 중요한 저술이다.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적 생신함을 유지하고 있는 고전이다. 이 책의 장점은 사회적 문제가 곧 심리적 문제라는 기본설정을 '권력'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분석하여, 비단 개인 심리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전 분야에 적용 가능한 심리이론으로 제시한 데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흔히 인권의 핵심원칙으로 인간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자력화 (empowerment)를 꼽는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럼없이 주장할 수 있는 상태가 인권이라고 할 때 그것은 메이가 말한 건강한 권력 추구와 동의어라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인권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그 사회에서는 갈등과 폭력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에이프릴 카터가 말했듯 시민이 직접행동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때 그 사람의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고양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른 예도 있다.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착한' 아이, 부모와 교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모범생-엄친아를 지향하는 교육은? 메이에 따르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오히려 씩씩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파격적인 견해를 겁 없이 내놓으며, 스포츠와 같은 건설적 경쟁을 많이 하도록 적극 장려하는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정치는 또 어떤가. 메이의 말을 들어보라. "'질서'와 짝지어진 '법'은 보통 현 상태 (status quo)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우리 시대 같은 전환기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현 상태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폭력을 일으키고 (…) 인간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손상시킨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정부가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본다면 <권력과 거짓순수>는 심리학 저술이지만 정치학 혹은 사회학 저서로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여러 분야에서 주요한 저작으로 취급될 가치가 있고 학제 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을 만한 풍부한 생각거리를 담고 있다.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자기 속의 권력 추구 욕구를 명쾌하게 긍정해 주므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이면 이상한 해방감으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롤로 메이는 흔히 실존주의 심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원창화 옮김, 홍신문화사 펴냄), 고명섭의 <니체 극장>(김영사 펴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를 곁에 두고 병독하면 권력에 관한 메이의 통찰이 마치 돋을새김처럼 우리 심상에 또렷이 새겨지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 201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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