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혁] 한반도 전쟁 위기와 신뢰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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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4-24 16:43 조회18,1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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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작년 12월12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중국은 미국과 함께 대북 유엔 제재 결의에 동참했고, 북한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고 시위라도 하듯이 올해 2월12일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의 연이은 강수로 미국은 권위가 도전을 받자 예년과는 달리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중인 3월 B-52와 B-2 등 전략 폭격기를 공개 출격시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한국의 독자적인 강경 대응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했다. 이에 북한은 다시 맞불 작전을 펴서 전략 미사일 부대에 사격대기 지시를 내리고 전시상황 돌입을 선언했다. 특히 일각에서 북한이 아무리 강경 자세를 보여도 외화 수입원인 개성공단을 폐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자 북한은 마치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남과 북 중 어느 쪽이 더 타격을 입는지 보자는 듯이 4월8일 개성공단을 잠정 폐쇄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은 한반도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4월6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을 연기한 상태였고, 박근혜 대통령도 4월11일 대북 대화 제의를 했다. 바로 다음날 한·미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 후 대화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고, 북한도 무수단 미사일 실험을 미루면서 한반도 상황은 수습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대화제의를 폄훼하는 북한의 성명 발표와 같이 상투적인 화술에는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5월7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대비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구체적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 주변 열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최대치는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대외관계를 정상화하여 강성대국을 이루는 것이다. 지난 3월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이 이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기술적으로는 이동식 장거리 핵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춰 나가면서 향후 대외 여건이 어떻게 변해도 대응할 수 있는 억지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핵도 보유하고 정치·경제·사회 발전도 이루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플루토늄 재처리와 미사일 실험을 북한이 넘지 않아야 할 금지선으로 설정하고, 유사시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패키지로 추진했지만,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는 플루토늄 재처리와 미사일 실험은 물론이고 북한의 핵 실험조차도 금지선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는 북한이 핵무기를 중동 지역 등 외부로 확산하는 것이 절대로 넘지 않아야 할 암묵적 금지선으로 간주되지만, 과연 북한이 비확산 원칙만 지킨다면 이동식 장거리 핵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춰 나가도 미국이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의 경우 북한이 고립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이익이 되지만,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될 경우 일본과 한국의 독자적인 핵 무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특히 아직 확률이 낮지만, 장거리 핵 미사일 능력을 북한이 보유하기 전에 이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이해와 일본의 핵 무장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질 경우 미국과 중국의 조율 하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핵 전문가인 시그 헥커 박사가 제시한 바와 같이 일단 북한에 대해 더 많은, 더 나은 핵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수출하지도 못하도록 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관계 정상화를 패키지로 처리하는 접근법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북한이 이동식 장거리 핵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춰 나가도록 사실상 방관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은 연쇄적인 핵 무장과 전쟁 가능성을 높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
임원혁 KDI 글로벌 경제실장
(경향신문, 201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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