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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테이크아웃 커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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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13 15:13 조회19,9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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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잔에 드릴까요, 테이크아웃 잔에 드릴까요?"


카페 카운터에서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테이크아웃 잔에 주세요."


잔을 들고서 `테이크아웃(take out)`하지 않고, 카페 안쪽 테이블로 `들어가서(in)` 노트북을 켠다.


커피향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이들이라면 의아해할 것이다.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용도가 아니라면, 굳이 `종이 맛`까지 먹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더러는 이 잔 때문에 카페로 가는 부류도 있다. 물론 이걸 의식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테이크아웃 커피잔은 `테이크아웃`이라는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의 산물이다.


밖으로 음식그릇을 가지고 나간다 해도 이게 짜장면 배달하고는 다르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마도 이 스타일이 확실하게 보편화하는 데는 햄버거가 결정적으로 기여하지 않았을까. 패스트푸드(fast food)라는 말처럼, 이런 음식에서 본질적인 것은 원하는 장소에 가져가 아무 때나 먹는다는 편의성이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커피의 테이크아웃은 좀 다르다. 햄버거는 먹으면 배가 차는 물질성, 곧 `욕구(need)` 차원과 관련되지만, 커피는 이에 비해 물질성에서 자유롭다. 오늘날 커피는 배고파서 먹는 음식도 아니고, 단순한 후식도 아니며, 도시문명의 에티켓이 스며 있는 사물이자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는 브랜드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욕망(desire)` 차원이 작용하고 있는 음식이다. 햄버거 테이크아웃은 커피 테이크아웃보다는 오히려 짜장면 배달을 더 닮았다.

그래서 자판기 커피잔은 그냥 `종이컵`이 되고, 스타벅스에서만 `테이크아웃 잔`이 될 수 있다. 테이크아웃 잔은 종이컵과 달리 실제로는 일회용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마시고서 곧바로 버리는 용도라기보다는, 개인이 `소유한 물건`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픽업데스크에서 돌아설 때 커피를 둘러싼 문화 전체를 나만의 작은 백팩에 집어넣고 능동적으로 향유하고 있다는 식의 기분에 젖는다. 그건 이어폰을 통해 어떤 힙합 음악을 나만의 귀로만 `소유`하게 되었을 때 우쭐함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 안에서도 머그잔이 아니라 이 개인주의자의 컵, `테이크아웃 잔`으로 주문한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MK뉴스, 2013.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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