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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출산율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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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01 15:16 조회21,7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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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3명으로 올랐다고 추정돼, 11년 만에 초저출산국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국가 차원의 저출산대책이 발표되기 시작한 지 약 10년 만의 일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198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2002년 한 명의 여성이 가임기 동안 낳는 자녀의 수, 즉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17로 떨어지게 되면서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 무렵부터 저출산 위기론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난 10년간 교육, 주거, 문화, 노동, 이민, 보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각 부문의 정책은 모두 저출산대책으로 포장되어왔다. 그러나 출산장려가 지상과제가 된 상황에서도 출산율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5년 이후 잠시 상승하던 합계출산율은 2008년 다시 1.19로 하락한 바 있다. 그러다가 10년 만에 겨우 초저출산국가의 기준이 되는 1.3선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합계출산율 증가가 가임기 여성의 일시적 증가의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긴 하지만, 당국으로서야 그간의 정책적 노력 덕분으로 보는 게 당연한 일일 터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무수한 저출산대책이 확인시켜준 사실은 어떤 특정한 정책만으로 출산율이 쉽게 오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정부와 언론이 사랑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출산율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 지원이 이전보다 크게 증가한 지금 어쩌면 완만하게 상승을 계속할 수도 있으리라는 정도가 현실적인 기대인 것 같다. 그렇다면 출산율이 어느 정도 안정된 지금이야말로 출산율 높이기를 당연한 가치 기준으로 삼아온 지난 10년을 되돌아볼 때가 아닌가 한다.


출산과 양육을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그에 대한 지원이 증가해온 것이 출산장려정책의 빛이라면, 가장 큰 그림자는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을 차별함으로써 출산을 여성 시민권의 근거로 만들고 그 결과로 여성 일반의 위치를 취약하게 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국가적 지상과제라는 인식은 ‘낙태’를 금지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단순논리를 만들어냈고,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여성들을 남성과의 관계에서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에 대한 지원 논의가 확대되어온 것에 비해 ‘다양한 가족’ 중에서도 비혼자, 무자녀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부부, 동성가족 등은 출산율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삼포세대’, 즉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에 대한 사회적 대책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지원이 이성과의 결혼과 출산에만 집중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감수성도 필요하다.


인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은 사랑뿐 아니라 사람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출산율이 아무리 높아져도 우리 사회가 살만하지 않은 곳이 되면 떠날 수도 있고, 거꾸로 살만한 곳이라면 다투어 찾아들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인력의 유출은 많은 나라에서 중요한 문제이며, 이동에 따른 인구 감소는 많은 지자체들이 경험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청년층, 장년층, 노년층 할 것 없이 나타나는 높은 자살률일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이 살만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인간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는 지속될 것이고, 미래의 삶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출산율이 중요한 지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출산율 높이기가 또다른 차별의 기제가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출산율에도 미래가 없을 것이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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