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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권력의 미학만으로 ‘카리스마’의 지속을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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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3-08 13:57 조회20,9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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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극장국가 북한』 권헌익·정병호 지음|창비|339쪽|20,000원


뉴튼의 고전역학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극장국가 북한: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는 북한에서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작동하고 있는 권력의 법칙에 주목한다. 『극장국가』의 질문은, 탈식민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북한이 근대 국민국가체제에서 ‘또 하나의 나라’이고 혁명정치를 추구했던 국가들에서처럼 개인숭배와 같은 ‘카리스마의 관례화’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근대국가의 보편적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과 달리 카리스마 권력의 ‘세습적인 형태의 통치권 승계’를 이뤄낸 이유를 겨냥한다. 『극장국가』는 북한의 이 특수성을 규명하기 위해, 베버의 권력개념과 기어츠의 극장국가개념과 같은 이론적 자원을 동원한다.


그리고 북한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이문웅의 가족국가의 개념과 와다 하루키의 유격대국가의 개념을 베버 및 기어츠의 이론과 접목한다. 특히 와다 하루키의 『북조선』은 『극장국가』의 선행연구다. 와다는 북한이 1961년 국가사회주의체제를 완성한 후, 후계자 김정일의 주도로 ‘1970년 무렵 새로운 상부구조’로 “김일성을 사령관으로 하여 전 인민이 받드는 유격대국가가 됐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1974년에 등장한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이라는 기치는 유격대국가를 상징하는 북한의 구호이며, “김정일이 연출가이자 디자이너로 있는 북조선의 유격대국가”가 “권력의 행사 자체가 의식, 연극에 있다고 하는” 극장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극장국가』는 『북조선』에서 언급된 세 쪽 정도의 극장국가 북한에 대한 언급을 권력세습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어츠와 와다 하루키로부터


기어츠는 19세기 발리섬의 정치체인 네가라(Negara)의 왕실의례를 관찰하며, 상호작용하는 상징의 체계, 상호작동하는 의미의 양식으로서 권력에 주목한 바 있다. 이 관찰은, 16세기 이후로 서구에서 등장한 국가론에 대한 비판을 위한 것이었다. 기어츠는 베버의 권력의 정치학, 마르크스의 권력의 정치경제학을 네가라의 사례를 통해 비판하고자 했다. 기어츠의 대안은 권력의 미학이다. 『극장국가』에 따르면, 북한은 유격대국가가 만들어지는 1970년대부터 국가권력의 연극적 연출과 권력세습을 연계하는 극장국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주도로 이뤄진 이른바 ‘혁명예술’은 대중적 사회동원과 대중적 정치교양을 위한 것으로, 공공예술과 국가정치 사이의 구분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인위적 예술정치를 통해 카리스마 권력의 자연적 도태에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강력한 현대적 극장국가”의 탄생이었다는 것이다.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와 같은 혁명가극이나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파의 묘역인 혁명열사릉의 개건사업 등을 식민지시대 항일무장투쟁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극장국가의 장치들로 보는 것이다. “1930년대 김일성의 영웅적 행위”를 “살아 있는 전통”으로 만드는 작업이, “유격대국가는 극장국가의 예술정치에 내용을 제공하고, 극장국가는 유격대국가의 전설과 통치권 패러다임에 형태를 제공한다”는 이론적 언명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극장국가』의 핵심적 진술이다. 1994년 ‘초월자’ 김일성의 생물학적 죽음으로 야기된 ‘대국상’은 카리스마 권력의 관례화의 위기였다.



북한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보다도 ‘대국상’은 『극장국가』의 ‘시각’에서 보다 심각한 위기였을 것이다.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배계급은 이 고난의 행군 시절에 금수산궁전의 개축, 조선로동당창건기념탑과 같은 극장국가를 위한 대형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음에, 『극장국가』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어버이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그렇게 많은 자식들이 목숨을 잃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가치가 있는가” 라는 가족국가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극장국가』의 지적은, 결론에서 지적되듯 외부의 시선일 뿐이다.



『극장국가』는 북한식 극장국가의 기원을 1970년대로 소급했지만, 와다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식 극장국가는 1994년 ‘대국상’ 이후 만개했다고 할 수 있다. 1994년 10월 미국과 제네바합의를 한 이후(그 합의에도 불구하고인지 아니면 그 합의 자체가 허구였는지를 판단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북한은 선군정치를 시작했다. 선군정치의 정당화는, 『극장국가』가 말하는 것처럼, “한 국가의 연극적 장치가 그 국가의 실제 물질적 힘과 반비례해서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한식 혁명가극의 완성판인 「아리랑」은 10만에 가까운 인민들이 출연해서 북한의 현대사를 정리하는 극장국가의 절정이다. 1926년 6월 김일성이 그의 어머니 강반석으로부터 받은 총, 1952년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총으로 상징되는, 선군정치와 함께 가는 ‘총대철학’에 대해, 『극장국가』는 “선군은 혁명주권이나 국가안보와 관련돼 있다면, 총대는 무엇이 진정한 인간을 만들고 무엇이 윤리적 삶을 구성하며 어떻게 의미있는 정치적 삶을 사느냐의 문제”라고 정리한다.



선군정치와 총대철학의 관계에 대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장혁명투쟁의 전기적 역사는 단순히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집안의 계통문제로 제시되며, 따라서 그의 카리스마도 그 사람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내림을 받은 집안의 유산이며 정해진 운명으로 그려진다. 나아가 그를 이은 후계자의 경력도 동일한 시나리오를 반복하며 전통의 계승자이자 수호자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른바 총대철학은 대체 불가능한 개인적 카리스마를 세습적 카리스마로 대체해야 하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인격화된 카리스마를 상속되는 권위의 형태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언명은 적절하다.



김일성의 부인인 김정숙이 극장국가이면서 가족국가인 북한에서, “위대한 수령으로부터 권총선물을 받은 유일한 자식으로, 또한 북한 혁명사에서 위대한 수령이 가장 뛰어난 총대였던 어머니의 자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북한의 카리스마 권력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정치적 친족관계’를 매개로 지속되는 기제에 대한 전형적인 기능주의적 설명이다.



이 설명은 최소한 두 가지 정도의 보완을 필요로 한다. 첫째, 유격대국가·극장국가라는 유기적 정치체의 지체인 인민의 동의기제가 설명에 포함돼야 한다. 남녀관계조차 초월자를 매개로 한 삼각관계일 때 그 의미를 산출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극장국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인간중심이론인 주체사상이 “적절하게 지도만 한다면 인간사회는 개인적 카리스마의 지속성을 막는 역사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음”을 주입하지만, 그 결과보다 인민의 자발성이 거세되면서 초월자를 수용하는 과정이 설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한계는 인류학자의 작품인 『극장국가』가 가지는 비인류학적 결함이라 생각한다. 둘째, 고전적 비판이지만 권력의 미학만으로 카리스마 권력의 지속을 설명할 때, 권력의 정치학과 권력의 정치경제학이 실종될 수 있다. 『극장국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한 국가의 연극적 장치가 그 국가의 실제 물질적 힘과 반비례해서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유기적 정치체를 생산하는 권력의 미학도 물질적 차원을 내재한다. 하나는 초월자와 인민의 경제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초월자를 산출하는 지배연합의 구성과 관련된 정치적 차원이다.



두 가지 보완이 필요한 저자들의 설명

『극장국가』는 책의 뒷 부분에서, 카리스마 권력의 관성을 절단할 수 있는 이행도 언급한다. 『극장국가』는 “선군시대 북한은 긍지에 찬 유격대국가이지만 실패한 가족국가”이고, “북한정권이 진정으로 가족국가로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바란다면, 우선은 유격대국가 패러다임을 개혁해내고 만주 빨치산의 영광스런 유산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꿔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에 미래가 있으려면 극장국가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북한에서 발생해야 하는 혁명은 “극장국가의 생명을 끝내기 위한 투쟁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이든 제도든 새로운 초월자를 만들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초월자 스스로 초월자의 지위를 내려놓을 때, 유기체는 생명을 잃는다. 초월자의 퇴위에 저항하는 지배연합에게 초월자는 기호의 형태로라도 존재해야 한다. 관성의 법칙은 마찰과 저항과 같은 외부적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그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큰 물체일수록 운동상태를 바꾸기 어렵다. 두 가지 가능성을 본다. 하나는, 『극장국가』에서 자세히 실증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 생존을 위해 인민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물물교환과 상호부조의 망이다. 이 망은, 유기적 정치체를 균열시킬 수 있는 북한적 시민사회의 단초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극장국가』에서 단편만이 언급되고 있지만, 국가를 다른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북한도 근대 국민국가처럼 안보를 최우선의 가치로 설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힘의 균형을 위해 핵을 가진 유격대국가는 안보국가의 극단적 형태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전환이 있지 않다면, 극장국가의 수명은 연장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초월자와 지배계급은, ‘왜’ “카리스마 권력의 필멸성에 저항하고, 그러한 권위의 비영속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서사적 투쟁”을 하고 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교수신문, 201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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