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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정치평론의 엔터테인먼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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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3-27 17:31 조회18,7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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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겨레 티브이(TV)> 프로그램이자 팟캐스트로도 인기였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가 끝났다. 이 프로그램은 최초의 연성화된 정치평론이라 할 수 있고, <나꼼수>와 그것을 이은 정치평론 팟캐스트 폭증을 예비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면이 있다. 그러니 그것의 종결을 계기로 삼아 지난 몇년간 정치평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참여와 동원에는 인지 과정이 필수적으로 함께한다. 그것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치뉴스와 대중매체에서 유통되는 정치평론이다. 정치평론은 뉴스를 시청자들의 인지 도식과 연결해 그 의미를 착근시키기 때문에 뉴스만큼 중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정치 뉴스 및 평론에서 독립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순진하다. 우리 모두는 <햄릿>의 호레이쇼가 그랬듯이 “나는 그렇게 들었고, 그것을 어느 정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엠비(MB) 집권기에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과 맞물리며 정치평론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의 방송장악과 종편 허용으로 보수의 미디어 지분이 과도하게 커졌고, 이로 인해 진보의 목소리를 담을 통로가 필요해졌는데, 이런 새로운 분화를 수용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 미디어가 발전해 있었다. 이로 인해 엠비 집권기의 정치적 진영분화의 심화와 함께 미디어의 진영분화도 강화되었는데,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정치평론 팟캐스트와 종편의 정치평론 프로그램이 그 증좌다.


이런 미디어의 진영분화는 정치평론 연성화를 넘어 엔터테인먼트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는 기제는 이렇다. 우선 시청률이나 조회수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그러면 정치평론이라 해도 의미 산출 못지않게 쾌락 산출이 중요해진다. 이것은 지상파의 정치평론과 비교하면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 지상파의 시사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시청률 압력이 그리 높지 않다. 어차피 시청률이 높지 않을 걸 모두 알고 있고, 그것에 걸맞은 수준의 자원을 배분받으며, 공익성이라는 가치를 담보한 영역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적 팟캐스트는 그러기 어렵다.


다음으로 그렇게 쾌락 산출이 중요해지는 한에서 그것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에 쉽게 이끌리게 된다. 전형적인 기법은 반복과 여분의 디테일 활용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애독자는 살인사건의 정교한 플롯뿐 아니라 푸아로의 카이저수염 같은 풍모나 초콜릿 마시는 습관에 대한 묘사를 즐긴다. 이런 반복적인 잉여요소 소비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면 왜 정치평론 출연자들이 캐릭터 구축이나 서로에 대한 빈정거림 속에서 누출되는 ‘인간적’ 디테일 또는 애드립 구사에 몰두하는지, 왜 여러 정치평론 프로그램이 <해피 투게더>나 <라디오 스타>와 유사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평론의 엔터테인먼트화는 내적 위험을 안고 있다. 미디어와 정치의 진영분화가 조응하게 되면, 고도의 자제심이 없는 한 정치평론은 갈수록 진영적인 자기탐닉성을 띠게 된다. 사람들은 정치평론으로부터 새로운 학습과 의미보다 반복적인 쾌락과 기존 인지 도식의 재안정화를 얻으려 하며 그런 시청자 지향을 프로그램들이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비교적 공정하던 시절에도 시사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왜 그리 높지 않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이유는 그런 프로그램들에서는 어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든 반대 진영의 더 설득력 있는 논거에 직면하는 ‘불쾌한’ 경험을 종종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경우엔 자기탐닉성이 방어된다. 하지만 진영화된 정치평론은 ‘불쾌한’ 경험을 피해 즐거움을 주며 그렇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본연의 기능, 곧 시간을 즐겁게 소각하는 경험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김종엽(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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