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촛불 흔들리는 현실···문학하는 사람들의 할 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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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3-06 17:28 조회3,4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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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곧 65세예요. 올해까지 가르치면 정년이에요”라며 다시 웃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또 맡은 일이 있다. 길동무 문학학교 교장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 학교는 22일부터 1년제로 확대 개편한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동 길동무 문학학교에서 ‘김명환 교장’을 만났다.
“처음엔 거절했어요. ‘이제 딴짓도 하면서 좀 편하게 살고 싶은데 무슨 교장이냐’고요. 더구나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평론도 잘 안 썼어요. 작가나 평론가들 잘 알지도 못하고요.” 여러 인연을 차마 떨쳐내진 못했다. 학교 설립 중심인물이자 강사인 송경동 시인과는 평소 알고 지냈다. 송 시인이 지난해 출간한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해설도 썼다.
길동무 문학학교 재단인 익천문화재단을 세운 김판수 이사장은 영문과 16년 선배다. 김 이사장은 1969년 ‘유럽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5년 실형을 살았다. 출소 뒤 도금 전문기업 호진플라텍을 창립했다. 이 회사는 도금 부문에서 세계적 업체로 성장했다. 김 이사장은 1967년 덴마크 인터내셔널 피플스 칼리지에서 만난 첫사랑 에텔 티칸데르와 40여 년 만에 재회한 일을 2017년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공동 이사장인 염무웅 선생님은 예전부터 알고 존경하는 분이고요.”
학교 설립 취지에도 공감했다. 이 학교는 개교 때 “문학(인)이 해왔던 사회적 역할을 올곧게 이어가고, 참되고 건강한 문학의 대중적 저변을 넓혀 가겠다”며 ‘진보적인 청년 작가’ 양성을 내세웠다.
수동적으로 교장직에 응했지만, 능동적으로 제 역할을 다하리라 마음먹은 것도 설립 취지와 이어진다. “지금 사회가 더 양극화되고 있잖아요. 육십대 중반 영문과 교수가 약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뭘 보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문학으로 이바지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게 내 본업이니까요.”
촛불이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도 교장직을 맡는 계기가 됐다.
“2016년 촛불집회 때 연단에 나온 평범한 주부가 ‘내 딸도 정유라같이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솔직히 있다. 우리 안의 최순실을 돌아보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며 내놓은 성찰이나, 지방의 한 전기공 청년이 ‘1~2년은 모르겠지만, 전망 없이 계속 일하기는 힘들다’며 토로한 좌절이 떠올라요. 지금 보면, (탄핵과 정권교체 이후) 촛불 시민들이 제시한 여러 개혁 과제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못 갔습니다. 자본주의 폐해를 끊임없이 극복하는 노력이 사회 각 방면에서 차분하게 이뤄졌다면 촛불도 안정적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요.”
2022년 대선 이후 상황을 두고 말을 이어갔다. “선거가 박빙으로 갈리며 현상적으로 사회가 양분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층부의 싸움이죠. 일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고통받고, 희망도 잃어가는 심각한 상황이거든요. 사회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학교는 제도권 교육에서 충족할 수 없는 교육과 만남을 지향한다. 김 교수는 점점 더 기성 현실에 안주하는 대학 문제도 꼬집었다. “기후위기, 사회적 양극화나 자본주의 폐해 같은 절박한 인류의 현안을 교수들이 진지하게 정면으로 고민하고, 학생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냐는 거죠.”
김 교수는 다시 ‘문학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촛불과 문학은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항쟁 때 그 촛불의 활력을 문학으로 계속 살리려는 거죠. 꼭 항쟁을 문학작품으로 써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촛불 시민들이 제기한 여러 목소리를 성찰하고 파고드는 작품을 고민하는 작가들을 길러내자고 생각했어요.”
김 교수는 이런 지향에 부합하는 문인으로 화물운수 노동자로 일하는 임성용 시인을 꼽았다. 임 시인은 김용균의 죽음 등 비극의 노동 현장과 지구 생명을 해치는 자본주의 현실을 그린 시집 <흐린 저녁의 말들>(반걸음)로 2021년 제1회 길동무문학창작 기금을 받았다. 김 교수는 길동무와 예술창작기금 협약을 맺은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현카)’ 같은 문화운동조직과 문학으로 연대하는 방법도 고민한다고 했다. 기후생태 위기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같은 과제도 문학학교 교육과 연결하고 싶다고 했다.
1년제로 확대하면서 특강 강사도 늘렸다. 특강진은 김 교수가 말한 지향과 목표를 드러낸다. 1학기 전체 특강은 염무웅 이사장, 2학기는 현기영 작가가 맡았다. 산업재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김훈 작가도 내년 이후 특강 참여를 약속했다. 1학기 특강진엔 박준·진은영(시), 이기호·정지아(소설), 조효제(르포), 2학기엔 김해자·신형철(시), 공선옥·김탁환(소설), 이문영·정혜윤(르포)이 들어갔다. 방학 때는 김연수(소설), 송경동(시)이 특강을 진행한다. 소설 담임 강사는 박소란·최지인, 소설은 김서령·이만교, 르포는 안미선·희정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교장 일과 함께 르포 반 특강을 했다. 올해도 르포 특강을 진행한다. “르포는 민주 시민의 자기표현 방식이죠. 사회가 외면하는 문제와 현실을 추적해서 파고듭니다. 어느 면에선 생활과 문학의 통일을 이루는 장르이기도 하고요.” 김 교수는 “르포 반에서 사회적 약자 편에서 조용히 활동해온 훌륭한 분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1년제를 끌어낸 것도 학생들인 셈이다. 운영진 사이에서 수업이 끝나고도 밤늦게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의 열의와 활동을 보면서 1년제 이야기가 나왔다. 김 교수는 “문학을 표방한 글들이 넘쳐나지만, 질적으로 뛰어난 글이 오히려 줄어드는 현실도 고려해 1년제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제도권 대학 어문학과 교육은 작가 배출보다 취업 중심으로 흐른다. 김 교수는 이 학교가 개성 있는 독자적 문학 교육 기관이라고 자부한다. 김 교수는 “조금 앞서 나간 말이지만, 상업주의는 경계하려 한다. 등단제도에 매달리거나 배출 작가 책 출판 등에 더 관심을 두면서 분파를 이루는 부작용을 절대 피할 것”이라고 했다.
연장선에서 학교 슬로건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사회 기층 대중의 삶을 고민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말 그대로 ‘문학 길동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김 교장’에게 가장 큰 걱정 하나는 ‘돈’이다. “학생들한테는 최소한의 수업료(1년 60만 원)만 받아요.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는 할인을 적용하고요. 하지만 특강 강사나 담임 강사들한테 정당한 대접을 못해 드리는 게 제일 고민입니다. 빨리 개선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뜻있는 이들의 참여가 많아지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작년 첫 수료생들이 자발적으로 후속 독서모임, 합평모임을 꾸리는 것을 보며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 길은 좋은 강의와 치열한 토론 속에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길동무 문학학교 교장’인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가 지난 25일 서울 서초동 문학학교에서 1년제 확대개편과 교육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
경향신문 2023년 3월 1일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301181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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