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연]세계 4대 불가사의 조롱까지, 중국이 축구 잘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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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06 12:16 조회3,0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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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축구 월드컵 시즌에 중국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곤 한다. 한국인인듯 싶어서 그런 거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부러운 듯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축구 정말 잘해요.” 으쓱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가 되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도 한 마디 건넨다. “중국도 앞으로 잘 하지 않겠어요?” 중국에 자주 가는 한국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이런 일 겪어 봤을 거다. 중국 남자들 정말 축구 좋아한다. 중국의 유럽 축구 리그 열풍은 한국이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이탈리아 세리에 리그를 좋아한다.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중국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여서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낀다. 문제는 중국 축구 국가 대표팀 실력이다. 인구 5천만 명인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단골로 나간다. 심지어 20세 이하 팀은 두 대회 연속 월드컵 4강에 들었다. 그런데 인구 14억 명인 중국은 좀처럼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이 축구 못하는 걸 세계 4대 불가사의에 넣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해도, 중국 사람은 술집에 모여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럽이나 남미 국가 팀을 응원한다. 중국 경제력이 커져도, 브라질에 축구 유학한 선수가 늘어도, 시진핑 주석이 축구 굴기를 외쳐도 중국 축구 실력은 여전히 한심하다. 중국은 왜 축구를 잘하지 못하는가? 중국 남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중국 남자 축구는 왜 늘 그 수준인가? 중국인도 답답해서 수많은 이유를 분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부패론이다. 중국 국내 리그에서 자주 터지는 심판 매수 사건이나 승부 조작 같은 비리를 말한다. 돈이 승부를 지배하니까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수 몸값은 웬만한 유럽 중하위 리그 수준으로 치솟았다. 국내서 충분히 몸값을 받으니까 유럽에 진출할 필요도, 죽어라 뛰어 국가대표가 될 필요도,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가도록 한 몸 바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는 거다.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원인 가운데 개인적으로 듣고서 솔깃했던 게 음양론이다. 베이징 어느 택시 기사가 들려준 진단이다. 중국은 음기가 세고, 양기가 약해서 그렇단다. 중국 남자들은 다리에 힘이 없다는 거다. 남자 스포츠보다 여자 스포츠가 더 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란다. 듣는 순간 귀가 번쩍했다. 사실, 중국 여자 축구는 세계 수준이지 않은가? 중국 여자 스포츠 성적은 대개 중국 남자 스포츠보다 세계 성적이 더 좋다. 더구나 중국에 살다 보면, 한국 여성보다 강한 중국 여성, 한국 남성보다 여린 중국 남성을 중국에서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음양의 기운 탓으로 돌리는 중국 택시 기사 말에 귀가 솔깃했다.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문화론적 해석인데, 조금 더 문화론적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자. 중국은 개인 종목은 단체 종목보다 더 잘한다. 그리고 단체 종목 중에서도 선수 수가 더 많아질수록 국제 대회 수준이 떨어진다. 개인 종목보다는 5명이 하는 농구 실력이 더 떨어지고, 농구보다는 11명이 하는 축구 실력이 더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한국문화에 정통한 왕샤오링이라는 중국학자가 한국문화와 중국문화를 비교한 책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 중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 어느 대학 부설 한국어 교육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학기 말에 외부 참관 교육을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티켓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한국인 교사는 중국인 학생에게 자발적인 양보를 부탁했다. 그런데 다들 양보하지 않았다. 한국인 교사는 이해할 수 없었고, 실망했다. 거의 한 학기 같이 수업을 받았고, 더구나 같은 중국인인데 이렇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인인 교사 생각이었다. 왕샤오링 박사의 해석은 다르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 사이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문화로 보면, 양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문화 원리로 보면 양보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문화와 중국문화 사이에 집단을 구성하는 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집단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있는 것은 같다. 하지만 집단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집단을 구성하는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한국인은 개인의 친소 관계를 떠나서 집단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한 학교 출신, 같은 해 입학한 사이라면,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모르더라도 서로 만나서 집단을 이룬다. 생판 모르는 사람,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도 고등학교 동창, 대학 동창이라는 이유로 만나고, 심지어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뒤도 봐주는 게 한국인이다. 특정 집단의 경계 안에 있으면, 같은 집단에 속해 있으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되고, 같은 소속이다. 개인적 친소 관계보다 어느 집단에 같이 속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친하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인이 집단을 구성하는 원리는 이와 다르다. 중국인도 한국인처럼 집단을 이룬다. 하지만 그 집단은 각 개인이 중심이 된다. 한 대학, 같은 고등학교 나왔어도 나하고 친하지 않으면, 내가 모르면 그 사람은 남이다. 집단적 소속감보다 개인적 친소 관계가 먼저다. 내가 알고, 나와 친한 사람끼리 모여서 집단을 이룬다. 어느 집단에 같이 속해 있으니까 우리는 하나이고 도움을 공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친하든 친하지 않든 한 팀이라는 생각이 더없이 약하다. 유명한 중국 정치 지도자 쑨원은 이런 중국인 기질을 흩어진 모래알 기질이라고 지적 했다. 하나로 뭉치지 않는 중국인 기질을 비판한 것이다. 이제 중국 학생이 티켓을 양보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같은 반에 속해서 한국어를 같이 배우기는 했지만, 나와 친하지 않고 잘 모르는 학생도 있다. 더구나 내가 양보한 티켓이 나와 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양보하는 게 쉽지 않은 거였다. 다시 돌아가 중국이 축구 못하고, 단체 운동에 약한 것을 생각해 보자. 이런 중국문화 원리를 적용해 보면, 같은 팀이라고 해서 한 팀으로 똘똘 뭉쳐지지도 않고, 팀을 위해서 희생하는 성향도 약하고 서로 패스를 잘하지 않는다. 좋은 기회를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넘겨주는 패스는 더욱더 하지 않는다. 중국이 축구를 잘하지 못하고, 개인 경기보다 선수 숫자가 많은 단체 경기를 잘하지 못하는 데는 이런 문화적 이유도 있다. 농담 같은 문화론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단순히 축구 이야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 직원이 개인 이익 앞에서는 빠르게 행동하지만, 팀이나 회사 조직을 위해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 일하는 한국 상사원들이 중국에서 꽌시를 만들 때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도 한중 사이 이런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집단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개인으로 만나 꽌시를 맺어야 한다. 협력사 소속 파트너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친구가 돼야 한다. 한국인은 집단적 연줄을 중요시하지만 중국인은 개인적 연줄을 중요시한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비즈니스포스트 2023년 6월 9일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17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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