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일]‘하수처리장 증설 반대’ 제주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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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10 17:50 조회2,8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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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줄 알았던 제주 구좌읍 월정리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갈등 종결’ 대타협을 통해 6년째 멈춰섰던 증설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월정리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지금의 월정리는 제주의 어떤 역사적 장면이고 사회적 단면인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월정리의 지난 시간이 제주도의 미래에 건네는 물음은 무엇인가. 현장을 지켜봤던 실천적 학자가 보내온 글을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글 쓰는 순서>
① 월정리 문제는 왜 복잡한가?
②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③ 유네스코 등재는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④ 지하의 동굴은 어떻게 지상의 정치를 일으켰나?
⑤ 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⑥ 해녀들은 어떻게 운동의 주역이 되었는가?
⑦ 월정리발 분산화론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말하는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님비로 고립시키기
“제주도는 동부하수처리장 문제, 단순 님비현상으로 치부하지 말라.”
1년 전 2022년 7월 월정리 마을회가 ‘오영훈 지사 면담에 대한 월정리마을회 입장문’을 발표했을 때 한 기사는 그 내용을 이러한 제목으로 압축했다(『제주환경일보』 2022.07.22.). 사실 월정리 문제는 님비(NIMBYism)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쉽다. 하수처리장은 쓰레기 처리장, 화장장,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등과 함께 님비 현상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지역기피시설이다. 이런 시설은 사회적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이런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오염과 악취, 사회적 낙인과 지가하락 등의 환경적·사회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외부효과 때문에 이런 시설의 입지 과정에서는 해당 지역의 공동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곤 한다.
그런데 님비는 월정리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던 낙인의 언어였다. 그때 님비의 내용을 풀이하면 이렇다. “제주도 차원에서 점점 늘어나는 하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제주도 바다가 오염되고 문제가 심각한데, 월정리 주민들은 자신들의 앞바다만 지키겠다고 하수처리장 증설을 반대하고 있다. 어딘가에 하수처리장을 새로 지으려면 입지를 구하기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더욱이 증설을 해야 하수를 제대로 처리해 방류할 수 있으니 월정리에도 좋은 일인데, 증설 반대라니 합리적이지도 않은 지역 이기주의이다.”
님비라는 낙인의 내용이 이렇다면, 그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월정리 문제를 월정리에 국한시키고, 월정리 싸움을 ‘월정리 vs. 그 밖의 제주도’의 구도로 떠올리게 함으로써 월정리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월정리는 님비라는 언어에 갇혀 왔다.
1997년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설치인가 당시 시설계획 평면도
님비의 가치
사실 님비는 ‘치부되다’는 동사와 호응할 만큼 값싼 명사가 아니다. 한국의 환경운동은 님비로부터 시작되었다. 1960, 1970년대 산업화가 초래한 녹지 파괴, 공해, 환경병 등의 문제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가시화되었고 ‘우리 자신을 지키겠다’는 저항은 마을로부터 시작됐다. “내 뒷마당에는 안 돼(Not In My Backyard)”라고 외쳐본 사람이 남의 앞바다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잘 안다. 내 뒷마당을 지켜봐야지 우리 지역도 지켜낼 수 있다.
“네가 거부하면 그 시설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해서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 이것은 생활자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행정기관의 시각이다. 그리고 행정기관의 의무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되도록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궁리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더욱이 월정리 싸움은 여느 님비현상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하수처리장은 하수 정화를 통한 환경오염 저감에 필수적이며, 월정리에 설치된 동부하수처리장은 신설이 아니라 증설인데도 월정리 주민들은 왜 이토록 오랫동안 반대해온 것일까. 바로 ‘제2차 증설’이기 때문이다.
증설은 없을 것이라던 약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동부하수처리장 건설 계획이 처음 나온 시점은 1987년이다. 그러나 해녀들을 비롯한 마을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십 년 동안 지체되다가 1997년 마을 이장, 개발위원장, 어촌계장, 부녀회장 등 마을의 대표단 4인이 받아들이며 공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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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년 시점 월정리 주민 분뇨처리장 시설반대운동과 1997년 시점 동부하수처리장 설치 수용에 관한 기사 / 출처=황정현 제공
동부하수처리장 착공 당시 도지사는 증설이 없을 것이라고 월정리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로부터 십년이 걸려 동부하수처리장은 2007년 가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7년만인 2014년 하수처리량을 두 배로 늘렸다가, 불과 3년이 지난 2017년 다시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 나왔다.
월정리 주민들은 하수처리장의 제1차 증설을 받아들이자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역 하수관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양의 하수 처리를 부담하게 되었다는 지난 경험으로 인해 ‘이번에는 반드시 막아내자’라는 공통의식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월정리 싸움은 지방 정부가 과거의 약속을 저버리고 반복해서 증설하려는 데서 빚어졌다는 점에서 님비의 관점을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녹녹갈등
그렇다면 월정리 싸움의 성격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1987년 동부하수처리장 설립 계획 수립 이후 월정리 갈등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보자.
출처=2023년 5월 30일 “월정해녀들의 말좀 들어줍써” 기자회견의 발표자료를 일부 수정여기서는 월정리 문제의 중요한 특징이 엿보인다. 2007년을 주목해보자. 동부하수처리장이 완공되어 가동이 시작된 2007년 그 해에 월정리의 용천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당시에는 무관해 보였던 이 두 가지 사안이 이후로 연결되며 월정리 싸움은 동부하수처리장 건설과 증설의 적법성 문제로 향해갔다.
그 지점에서 월정리 문제는 ‘녹녹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녹녹갈등은 환경적 가치에 기반하여 전개되는 행동들 사이에 딜레마가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탈탄소 에너지 정책 추진을 위해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데 이는 산지와 해안가의 훼손을 동반한다.
월정리 문제도 하수 처리 용량 증가와 문화재인 동굴 보존이라는 환경적 가치 간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2016년 10월 26일에 열린 문화재위원회 제10차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에서는 용천동굴 내의 침출수 이송관로 매설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는데, 한 문화재 위원의 현지조사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생활쓰레기의 처리를 위한 시설에서 발생하는 침출수의 처리는 환경보존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시설이며, 이송관로의 설치도 필수적인 시설로 생각됨. 그러나 … 건설 단계에서 동굴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설치 후에도 침출수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세계유산의 훼손이나 오염의 위험이 있는 시설의 설치는 적절하지 않음.”(「2016년도 문화재위원회 제10차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 회의록」, 문화재청 회의록 공개자료)
약하고 쉬워서
하지만 녹녹갈등이라는 접근법도 불충분하다. 월정리 싸움의 주요 구호는 “용천동굴을 지키자”만이 아니라 “해녀의 생존권을 지키자”, 나아가 “하수 처리를 분산화하라”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월정리는 면적 6.63㎢에 지금도 인구가 800명 안 되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더구나 동굴이 많은 지대라서 하수처리장의 건설과 운영에서 적합성이 떨어지는 입지다. 그런데, 왜 이 마을에 동부하수처리장이 들어선 것일까.
해녀이자 월정리 비대위 전 공동위원장 김은아는 그 이유를 주민의 수가 적기 때문에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해도 그 힘이 크지 않으며, 또한 동굴 위의 토지가 군유지인 경우가 많아서 사업 부지 확보가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2023년 5월 10일 인터뷰에서). 즉 적합해서가 아니라 ‘약하고 쉬워서’ 이곳에 하수처리장을 세웠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그 역사는 건설만이 아니라 증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 당국의 입장에서는 하수처리장이 지역기피시설이기에 입지를 찾아 새롭게 지으려 하면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이 예상되고, 신설을 위한 시간과 재정의 비용이 크기에 기존의 하수처리장 시설을 개선해 처리량을 증대시키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애초 동부하수처리장의 건설 당시 증설은 없다고 약속했음에도 그 약속을 지키기보다 깨뜨리는 편이 행정 입장에서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해녀들을 비롯한 월정리 주민들은 ‘약하지’ 않았다.
떠넘김을 떠맡지 않기
애초 동부하수처리장의 하수 처리량 규모를 10년 사이(2007~2017)에 4배로 늘리려고 한 것은 이곳이 관할하는 인근 지역(구좌읍·조천읍 등)의 인구 증가 때문만이 아니다. 구좌읍·조천읍의 인구는 10년 동안 불과 6160명이 증가했을 뿐이다. 이보다는 제주도 관광객수가 2007년(가동 시작) 543만명 → 2014년(1차 증설 완료) 1525만명 → 2017년(2차 증설 계획 발표) 1639만명으로 크게 늘었으며(““우리도 껍데기 뿐인 소라될라” 하수처리장 ‘몸살’ 앓는 월정 바다”, 『한겨레』 2023.05.27.), 삼양과 화북처럼 멀리 떨어진 도시지역의 하수를 비상시 이곳으로 유입해서 처리하겠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부담을 전가(轉嫁, 떠넘김)하는 것으로써, 월정리 문제에서 환경 전가의 회로는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도시민에게서 해녀에게로, 육지에서 바다로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월정리 싸움은 ‘전가의 정치’에 대한 거부이다.
‘분산화로의 하수 정책 전환’이 마을 내에서 뚜렷한 주장으로 나오고 제주시민사회의 여러 성원이 월정리 싸움에 참여하며, 지난 1년 사이 월정리 싸움을 대하는 시선은 많이 달라졌다. 월정리는 더 이상 님비라고 낙인찍혀 고립되어 있지 않다. 월정리 문제는 제주도 차원의 문제로 부상했다. 왜냐하면 ‘더 이상의 떠넘김을 거부한다’, ‘자신이 저지른 오염은 자기 지역에서 책임지자’, ‘그로써 환경민감도를 키우자’는 월정리의 메시지는 제주사회에서 선도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정리의 싸움이 제주사회에 발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현재의 잘못을 미래에 전가하지 말라.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교수
제주의 소리 2023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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