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깊은 수치와 무기력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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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9-08 12:16 조회2,7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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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이 나아가려는
핵동맹은 전쟁 위험 높이고
생명터전 불가역적으로 퇴행시켜
이게 수치와 무기력의 핵심일 것
그러나 여기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로 주위 사람들이 깊은 수치심과 무기력을 토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7월 후쿠시마현을 강타했던 바다에게 보복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방사성 물질로 범벅 된 오염수를 지난 8월24일 전격 방류하기 시작했다. 이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실제로 사태가 일어나고 나서야 심하게 움직이기 마련인지라 방류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던 때와는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우리를 수치심과 무기력에 빠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바다에 대한 원초적인 감수성이 직격을 당한 탓이 컸을 것이다. 이는 단지 바다에 대한 낭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우리 삶은 가시적으로는 육지에서 꾸려지는 것만 같지만 사실 바다에 의존하는 바 크다. 단순히 우리가 바다에서 나는 생물을 섭취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다는 인간의 또 다른 자아다. 바다 앞에 섰을 때 해방감과 막막함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육지에 사는 존재가 바다라는 한계를 직접 대면하는 찰나에 생성되는 자아 때문이다. 이 자아는 한편으로 수평선을 넘으려 하지만 대부분 발길을 돌려야 한다는 진실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다를 떠나도 바다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다가 일상인 사람들은 육지에 사는 이들과는 또 다를 것이다. 이는 육상 생명의 시작도 바다에서 이뤄졌다는 진화사적인 맥락과는 다른 삶의 실감 문제이다. 주위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수치심과 무기력은 아마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가 심하게 모욕당하고 있다는 심정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한 정부가 바다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저지르는 일본 편에 섰다는 사실에서도 충격을 받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어느 후보를 선택했느냐와는 다른 차원에서, 어쨌든 우리가 속한 국가 공동체인 대한민국의 정부가 거리낌 없이 일본의 야만적인 선택에 암묵·동조(정황상으로는 승인)한 것을 넘어 적극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배신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집권 후 계속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말을 쏟아냄으로써 협의와 합의라는 공화국 기본 원칙을 무시하다 못해, 원전 오염수 문제에서는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며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 중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입장에서 사안을 보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이번 오염수 방류 사태를 통해 갖게 됐다.
‘과학’의 이름으로, 국민을 정치 선동에 좌우되는 우민(愚民)으로 여기는 사실 앞에서도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과학적 사실을 넘어서는 감정적 반응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에는 원인과 맥락이 있는 법이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대체로 ‘과학’의 차원에서는 일시적이고 충동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득권 카르텔’이 들먹이는 과학이라는 것은 고작 ‘정치 과학’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너무도 많다. 정치 과학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의심과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 과학이 ‘공산 세력의 반일 감정’이거나 ‘가짜뉴스’인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 사실을 ‘공산 세력의 반일 감정’이나 ‘가짜뉴스’로 만드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정치 과학 목적이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 회담 직후 오염수 방류를 단행했다. 그 전에 한국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전임 정부의 ‘어설픈’ 탈핵 정책에 대해 검찰 수사를 하는가 하면 다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지난 7월 폭우로 산사태가 나고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인데도 부산에 입항한 미국의 핵잠수함 켄터키함에 대통령 부부가 ‘외국 정상 최초로’ 승선했다. 언론은 ‘외국 정상 최초’를 강조하면서 엄청난 영광이나 된 듯이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왜 나 같은 사람은 수치를 느끼는 것일까.
일련의 사태 전개를 볼 때 원전 오염수 방류는 반핵의사회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주장처럼 한·미·일의 핵동맹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핵동맹은 전쟁 위험을 높이고 생명의 터전을 불가역적으로 퇴행시킨다. 이게 수치와 무기력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황규관 시인
경향신문 2023년 9월 3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90320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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