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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에너지 2000W, 양평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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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1-25 16:38 조회21,5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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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연방공대 학자들은 인류가 지속가능한 세계로 나아가려면 1인당 에너지 소비가 2000W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계산을 내놓은 바 있다. 2006년 전 세계의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가 그 정도였으니 선진국이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여야 그 목표는 달성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5분의 1, 우리나라 사람들은 3분의 1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반면에 인도인들은 에너지 소비를 4배, 중국인들은 2배 정도 늘려도 된다.


1인당 에너지 소비를 2000W로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경기도 양평에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가정 두 식구 차원의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2000W의 에너지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난방, 온수, 자동차 연료만이 아니다. 우리가 생활하며 소비하는 모든 에너지를 합한 것이다. 거기에는 의식주를 위한 에너지만이 아니라 여가활동이나 문화생활을 위해 소비되는 에너지도 들어간다.

 

양평의 가정에서는 먼저 주거생활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크게 줄이려 한다. 집은 난방에너지를 아주 적게 소비하는 패시브하우스로 지었다. 또 난방, 온수, 요리, 가전제품, 조명, 식수 공급 등을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는 모두 집의 벽과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다. 이 양이 1인당 약 300W이다.

에너지는 먹을거리를 얻는 데도 들어간다. 먼 곳에서 온 것, 쇠고기나 돼지고기, 냉동식품, 인스턴트 식품은 에너지가 많이 투입된 것이고, 집에서 요리하지 않고 외식을 하면 에너지 소비가 더 늘어난다. 양평의 두 식구는 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을 먹고 고기는 가끔 먹으며,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게다가 집 앞에 지은 온실에서 채소를 가꾸어 먹는다. 이들 에너지를 모두 합하면 한 사람이 약 450W를 소비한다.


이동을 하는 데도 많은 양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양평의 가정은 자가용을 거의 타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에 오려면 꽤 먼 길을 기차와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 일주일에 한 사람이 기차를 이용하는 거리는 약 250㎞이고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가는 거리는 약 100㎞이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약 700W, 1년에 한 번 정도 제주도를 오가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합하면 약 850W가 된다.


마지막으로 옷, 신발, 가구, 책 등을 사고 영화나 연극을 보거나 여행을 가도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공공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사용되는데, 이를 위한 양평 가정의 소비량은 평균 이하이고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약 800W로 계산된다.


위의 계산을 모두 합하면 약 2400W에 달한다. 2000W를 거의 달성한 셈인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큰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위 두 식구의 생활방식을 자주 여행을 하거나 외식과 물건사기를 즐기는 사람은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양평 가정은 꽤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고 할 수 있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의 시대에 누구나 참고해야 할 시도를 하고 있다.

2년 전 일본 후쿠시마에서 지진에 이은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 우리 사회에서도 원자력발전의 위험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원전 주변지역이나 건설 후보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반대운동도 활발해졌다. 이에 반해 우리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어야 하고, 얼마나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양평의 가정과 같이 몸으로 실천하는 사례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고민이나 실천 없이 반대의 목소리만 높으면, 다수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는 더 멀리 가버린다.

이필렬 방송대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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