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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쟤들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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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08 16:03 조회21,4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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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시민캠프에서 일했던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가 출연했다. 주제는 대선 시기 민주당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작년 11월21일 여야 합의로 법사위에 넘겨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된 일과 관련된다. 이 일은 박근혜 당시 후보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와중에 새누리당이 그 공약을 실현할 법을 무산시키며 친대기업 성향을 거리낌없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때 제 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 문제를 들고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새누리당의 행태를 알리고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다. 하지만 제 대표가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들은 답변은 “쟤들이 그렇지 뭐”였다는 것이다. 제 대표 한 사람의 말을 듣고 민주당 의원들을 통째로 비판하긴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에서 이들이 그간 보인 행태의 속내를 엿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쟤들이 그렇지 뭐”라는 반응에는 상대를 얕잡아 보는 마음, 도덕적 우월감, 상대를 설득해서 바꿀 수 없다는 냉소적 태도가 섞여 있다.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의회활동과 정치활동이 제대로 될까? 이래서는 자기 실력을 키우는 노력은 미약해지고, 상대를 설득할 때 정성을 다하게 되지 않고, 비판과 투쟁은 건성이 되어 버리며, 타협마저 쉽게 하게 된다. “쟤들이 그렇지 뭐” 해서는 대중의 삶을 개선할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일궈내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태도는 민주당 의원들한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개혁진영에 널리 퍼져 있으며, 민주당 의원들이 그런 것은 같은 문화를 공유한 때문으로 보인다.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 생기기 쉬운 이런 문화와 습벽은 우리 사회 성원의 저열한 속성은 모두 끌어다 모은 것 같은 이명박 대통령과 싸우며 더 강화되고 널리 퍼져 나간 것 같다. 악과 싸우다 보면 악을 닮게 된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들어맞는 듯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그럴 일이 있다면 박근혜 당선인과도) 정말로 제대로 싸우는 길은 이런 나쁜 습벽이 내 안에서 자라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윤창중, 이동흡 그리고 김용준으로 이어지는 박 당선인의 인사 파문을 보며 “쟤들이 그렇지 뭐” 하는 자족감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대선 패배의 아픈 상처를 조금은 달래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심리상태로는 박근혜 당선인이 괜찮은 인사를 하거나 좋은 정책을 실행하게 되면 “쟤들이 저렇기도 하나” 하며 당황하게 될 뿐이다.


명심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너절함과 모자람이 아니라 우리의 좋음, 우리의 성숙함, 우리의 대담함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갖추어야 할 대담함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제대로 된 협력을 하며, 그 둘을 하나로 결합하는 데 있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공약에서 후퇴하려 할 때 “쟤들이 그렇지 뭐” 하며 냉소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오히려 박 당선인이 한 뼘을 나아가려 하면 그 한 뼘을 반 뼘 더 진보적인 곳까지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박 당선인의 많은 공약은 우리로부터 빌려간 것이다. 그러니 박 당선인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을 넘어 그에게 공약 탈출을 권고하는 집단과 싸우며 그를 ‘성공시켜야’ 한다. 예컨대 복지재원 조달 대책을 끈기있게 요구하고, 널뛰고 있는 기초연금제도를 제대로 수립하게 하며, 비급여와 선택진료비를 포함하는 4대 중증질환 의료보장을 이루게 해야 하며, 그것을 우리의 개입과 비판과 협력의 성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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