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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비례대표제 확대, 시민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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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1-19 12:38 조회21,3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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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관한 ‘시민 500인 원탁토론’에선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다.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토론 전엔 참가자들이 경제체제 개선과 양극화 해소라고 가장 많이 응답했으나, 3시간의 토론 후엔 그 답이 정치개혁으로 바뀌었다. 또한 ‘비례대표 의석수 100석으로 확대’가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정치개혁 공약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꼽혔다. 이 토론회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우리 시민들은 약간의 토론과정만 거쳐도 “문제는 정치다”라는 점과 “그 해법은 비례대표제의 확대다”라는 사실을 쉽사리 파악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공히 비례대표제의 강화를 약속했다. 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할지를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그 공통의 공약은 두 후보의 ‘새정치 공동선언문’에도 담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민들이 만족할 리는 없다. 그들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한 비례대표제 강화법안이 통과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개혁안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어떻게’를 묻는 시민들의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즉 국회의 저항을 어떻게 뚫을 것인지에 대한 방책이 그 개혁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위에 말한 시민원탁회의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

 시민회의를 통한 선거제도의 개혁은 이미 캐나다와 네덜란드 등에서 추진된 바 있다. 국내에는 하승수 변호사(주간경향 2011·12·7)와 이지문 연구원(경향신문 2012·11·10) 등이 경향의 지면을 빌려 소개하기도 했다. 안철수 후보의 캠프에서는 이 방식의 공약 채택 여부를 심도있게 논의해왔다. 그만큼 실효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방안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선거제도의 개혁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혜택을 본 기존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고, 거기서의 개혁은 대개 국회의원이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시민회의 방식은 대통령이 바로 그 시민의 힘을 모아 비례대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 중 하나다.

차기 대통령이 이 방식을 채택할 경우 그는 취임 직후 국회의원 정수와 동일한 300명의 시민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회의’를 구성할 수 있다. 추첨제를 택하는 이유는 특정 이념과 가치 등으로부터 시민회의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선정된 시민의원들은 총 1년 동안 처음 4개월은 선거제도의 학습, 다음 4개월은 다양한 사회·경제 집단들로부터의 의견 청취, 그리고 마지막 4개월은 공개 토론과 논쟁 과정 등을 거쳐 그들이 생각하는 최적의 비례대표제 개혁안을 도출해낸다. 그러면 대통령은 그 시민회의안을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다. 만약 국회가 국민투표 회부에 반대할 경우, 대통령은 그 개혁안의 도입 여부를 국회의 가부투표로 결정케 할 수도 있다.

시민의원들은 분명히 한국적 상황에 가장 적합한 비례대표제를 골라낼 것이다. 단 3시간의 토론만으로 양극화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는 정치적 해법으로 풀어야 하며, 그를 위해선 비례대표제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걸 정확히 파악해내는 우리 시민들이다. 그들의 집단지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가 웅변하고 있다.

게다가 시민회의 방식은 가장 실효성 높은 선거제도 개혁 방안이기도 하다. 1년간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이 직접 만들어낸 개혁안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가 거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단일화 협상에 문제가 생김에 따라 ‘새정치 공동선언문’ 발표도 늦춰지고 있다. 그러나 늦춰졌을 뿐 멈춘 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양측은 이 기회에 공동선언문의 미진함을 보완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례대표제의 개혁을 현실적 제약 조건하에서 ‘어떻게’ 실현해낼 것인지, 그 방책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정치개혁과 정권교체를 바라는 양 후보의 지지층 모두가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안 후보와 문 후보의 캠프 일각에선 시민회의 방식의 채택이 포퓰리즘으로 매도될 걸 우려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이란 특히 선거정치에서 당장의 국면만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목적으로 국익이나 공익에 대한 중장기적 고려 없이 대중에게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행태를 지칭한다. 시민회의 방식은 결코 그러한 성격의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중장기적 공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정치제도의 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줄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수단이다. 우리 시민들의 뛰어난 집단지성을 믿으시라. 그들은 결코 시민회의 방식의 주창자를 포퓰리스트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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