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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반지를 잃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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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1-26 14:33 조회21,8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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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중요한 시기인지라 공약이 쏟아지고 최근에는 두 야권후보의 단일화 협의가 진행되면서 세간의 이목이 거기에 쏠려 있었다. 필자도 교육공약평가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약간은 이 대사(大事)에 끼기도 한 셈이지만, 그동안에 개인적으로는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났다. 결혼 이후 늘 끼고 있던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반지를 잃어버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분실했을 때는 반지가 떨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홍천강 모래사장을 무작정 파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언제 어디서인지부터가 알 수 없는 터라 막막했다. 얼마동안 요즘의 최대 관심사인 단일화 협상을 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생각은 잃어버린 반지에 가 있었다.


 어떤 특별한 반지의 운명이 세계의 향방을 결정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영국작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영화로도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악마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든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대장정의 모험이 주된 내용이다. 절대반지는 결국 녹아 없어지지만 이 반지에 매혹돼 그것을 얻으려고 싸우는 인간들의 욕망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톨킨의 절대반지가 권력을 의미한다면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선이야말로 이 반지를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단일화는 바로 이 절대반지를 낄 자격을 누가 갖느냐는 영웅들의 담판이라고 하겠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국민들에게 언약한 단일화 시한이 임박한 상황이어서 긴장감이 더해지는 한편으로 불협화음도 잇따른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공언이 무색하게 서로 충돌하는 양상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려면 두 진영이 마음을 비우고 협상에 임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절대반지 앞에서 마음을 비우기가 쉽다면 톨킨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의 영웅들이 이로 인해 죽음을 당하지도, 멀쩡하던 호빗족 하나가 골룸으로 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 프로도는 선하고 고결한 성품으로 절대반지를 없애는 과업을 감당하게 되지만, 반지를 소유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은 악령처럼 꿈틀거리며 수시로 그를 괴롭힌다. 마지막 순간조차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반지를 끼었다가 골룸이 손가락을 물어뜯고 용암에 떨어짐으로써 비로소 반지는 소멸되는 것이다. 그만큼 권력 앞에서 마음을 비우는 일은 누구에게든 힘겨운 투쟁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비우는 싸움이 중요한 것은 단일화의 아름다운 귀결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일화 이후 함께 대선승리를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도, 정권을 되찾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감에 있어서도 늘 계속되는 싸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서 절대반지는 파괴되지도 않고 또 파괴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사리사욕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지도자에게 맡겨 최대한 그것을 통제하고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행사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절대반지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공적인 정신을 가진 선의의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 권력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 온갖 사람들이 꼬이기 때문에 프로도의 충실한 벗이자 비판자인 샘과 같은 사람들만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집권세력이 마음을 비우는 집단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법하다.

홍천강에서 잃어버린 반지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 아직도 모래사장에 박혀 있는지 알 길 없으나 이번에 잃어버린 반지는 다행히 며칠전 돌아왔다. 절대반지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소중한 그 반지는 필자가 다니는 인근 수영장에서 발견되어 한 달간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지가 사라졌던 그 한 달간이 오히려 반지의 의미를 더 생생하게 했다면, 가끔씩 반지를 잃어버리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경향신문, 201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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