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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2012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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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2-28 11:33 조회25,3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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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총통선거(1.14)로 시작된 2012년의 지구정치가 한국의 대선(12.19)으로 막을 내렸다. 처음과 마지막이 모두 여당의 승리로 귀결된 점이 상징하듯, 올해의 정치는 보수가 대세다. 물론 미국 대선(11.6)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바지만 이는 교체라기보다는 승계에 가깝거니와, 이 점에서 사회당이 17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프랑스 대선(5.6)이 진정한 의미의 권력교체라고 하겠다. 예상 밖의 지구민심(地球民心)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보건대 작년은 격동기였다. ‘아랍의 봄’으로 시작하여 동일본 대지진을 거쳐 월가점령시위라는 ‘미국의 가을’로 굽이치는가 하더니, 어느 틈에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의 죽음(12.17)으로 엄습한 ‘평양의 겨울’로 마감한 2011년은 마치 전야(前夜)와 같았다. 그래서 무려 60개국에서 치러질 선거가 기다리고 있던 올해는 무언가 획기적인 정치 변화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지니게 됨이 자연스러웠다. 결과는 개혁 진보의 패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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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 (북한, 중국, 일본, 대한민국 순)

 

동북아시아로 좁히면 더욱 기이하다. 태자당(太子黨)의 전성기라고 할까. 총선(6.28)에서 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수평적 권력교체에 성공한 몽골을 제외하고, 지역정치는 마치 왕조의 부활인 양, 2세/3세의 활갯짓이다. 일찍이 김정은(金正恩)이 권력을 승계한 북한을 필두로, 중국에서는 시 진핑(習近平)이 총서기에 오르고(11.15), 일본은 총선에서 압승(12.16)한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安倍晉三)가 차기 총리를 예약한 상태고, 한국에서는 아시다시피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승리하였다.(12.19)

태자당이란 상해파(上海派)․공청파(共靑派)와 함께 중국의 과두지배 블럭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 혁명원로의 자제그룹이다. 공신의 후예인 태자당과 자수성가한 공청파의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정치는 조선왕조로 치면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의 대립에 비길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 일종의 조정역을 맡은 상해파의 존재로 3파가 균형을 취하는 점이 절묘하다. 이번에 최고권력에 오른 시 진핑은 시 중쉰(習仲勳, 1913~2002)의 아들이다. 1926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한 후 줄곧 혁명에 헌신한 시 중쉰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출범(1949) 이후 국무원 부총리(1959) 등의 요직을 거쳤으나, 1962년 반당분자로 숙청, 다시 문화대혁명으로 투옥,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문화대혁명의 종언으로 복권된 그는 1978년부터 광둥성(廣東省)에서 봉직하며 개방론을 취함으로써 덩 샤오핑(鄧小平, 1904~97)시대의 물꼬를 텄다. 그리하여 1981년 중앙 정치로 화려하게 복귀한 시 중쉰은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1988)을 비롯한 직책을 두루 역임하는 만년을 누렸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곤란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로되 8대혁명원로의 아들 시 진핑은 태자당 중의 태자당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북아 네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모두 태자당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1위원장과 박근혜 당선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베 신조 총재의 집안도 뜨르르하다. A급 전범으로 전후 보수정치를 이끈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총리가 외조부요, 외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 1924~1991)가 아버지니, 집안의 혜택이 듬뿍이다.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 아버지의 지역구, 야마구치현(山口縣, 옛 조슈번長州藩)의 시모노세키(下關)를 물려받은 다선의원으로 이제 두번째 총리에 오를 아베 총재는 그래서 역경을 모른다. 그의 이름에 든 ‘신(晉)’은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1839~67)에 대한 경의의 표현인데, 막부에 의해 처형당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59)의 고제로 스승의 뒤를 이어 토막(討幕)운동에 나섰다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직전에 병사한 다카스기는 뛰어난 지사지만, 서양의 충격 속에서 일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침략해서라도 일본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국가주의가 병통이다.

폐일언하고 2012년에 출현한 태자당의 동북아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어느 부모 아래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근대적 공리에 반해 양극화의 극적인 표징이라 할 정치적 독점이 집합적으로 드러난 점에서 이 현상은 긍정적이지 않다. 왕조시대에도 젊은 선비의 예기(銳氣)는 일부러라도 키웠다고 하는데 젊은이들의 낙심이 더욱 커질까 걱정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태자당의 집합적 출현이야말로 위기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자기구원을 위해서도 대외적 충돌보다는 대내적 개혁에 더 힘쓰리라는 전망도 가능할지 모른다. 사실 태자당도 처음부터 태자당이 아니거니와, 동북아 각 나라들이 직면한 위기의 출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양극화 또는 정치적 독점은 해체해 마땅한 터이다. 아마도 이것이 태자당에게 맡겨진 역사적 임무일진대, 아베 총재가 독도(獨島)와 조어도(釣魚島) 문제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한국과 중국에 보이는 것이 그 희미한 단초인가? 임진왜란 7주갑을 맞이하면서 분란에 빠진 동아시아의 2012년이 저문다. 태자당의 동북아가 오히려 점진적 내부개혁을 통해 나라와 지역을 함께 살리는 탈태자당 사회의 출현을 촉진하는 곳으로 진화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최원식 (인하대 인문학부 / 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포럼, 201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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