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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동아시아의 2013년, 한반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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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1-14 14:41 조회23,2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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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동아시아 여러 신문들의 신년 사설들을 비교해 보았다. 거기에는 자기 사회가 당면한 과제와 그 해결의 전망이 간명하게 압축되어 있다. 동아시아인들이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또 희망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2013년은 주요 국가들에서 지난 연말 권력 교체가 이뤄져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는 첫 해이다. 그런데 공산당 안의 엘리뜨 교체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권력 이동이 이뤄진 중국과 달리 일본과 한국에서는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 결과에 대한 평가가 각 신문사의 입장에 따라 달라 흥미롭다.


올해 『아사히신문』은 예년처럼 며칠에 걸쳐 신년사설을 연재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1일 하루만 실었다. 그 요지는, 일본이 당면한 과제에 대한 종래의 사고가 국가를 주어(主語)로 한 것이어서 새로운 전망이 나오지 않으니 ‘국가를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주권을 독점하지 않고 크고 작은 공동체와 공유하는 틀을 제안하면서 자치 확대에 주목한다. 지난 연말의 선거 과정에 “일본을 되찾자”(自民黨), “일본재건”(公明黨), “강한 일본”(日本維新의 모임) 등의 구호처럼 ‘일본’이란 어휘가 넘쳐난 현상에 대한 성찰의 결과이다. 일본을 상대화하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그 신문의 입장이 일본사회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로 읽히면서도 아베정권 이후 일본 정세에 대한 깊은 비관이 어딘가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년처럼 여러 분야에 걸쳐 연속적으로 과제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런 인상을 갖게 한다.

이 점은 『요미우리신문』 사설의 힘찬 어조와 선명히 대조된다. 올해를 선진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반전공세(反轉攻勢)의 기반을 다지는 한 해로 삼자는 그 신문은 아베정권의 사명이 정치의 안정을 통해 국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사설 서두에 “국력은 경제력, 방위력, 기술력 등으로 구성되는 그 나라의 종합력이다”는 뻔한 정의까지 제시하면서 ‘국력’을 강조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안정, 경제재생과 성장 회복에 이르는 정책들의 세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경제성장에 필요한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확보에 결정적인 원전의 재가동과 그 인프라 수출까지 요구한다. 이 정책들이 미일동맹(의 강화)을 축으로 하는 방위력 증강과 직결된 것임도 물론 언급된다.


자민당 아베정권에 친화적인 『요미우리신문』의 이같은 사설을 보면 일본이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국방력 증강으로 재무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짙게 드러난다. 이런 움직임이 전략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려는 미국의 의도와도 부합될 것처럼 보인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친미보수적인 박근혜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한미일 동맹의 강화는 호기를 맞은 것인가.


그러나 동아시아의 2013년은 일본 주류 세력의 의도대로 쉽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미일관계도 아베정권의 뜻대로만 풀리기 어려울 것이다. 연초 미국을 방문해 재선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려던 아베 총리의 계획이 미국의 거절로 무산된 사실은 시사적이다. 일본의 내부 갈등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와 오끼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 양국 현안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을듯해 회담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미국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이다. 아울러 아베정권의 역사인식 후퇴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와 언론)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한미일 동맹을 기본축으로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그와 협력해야 하는 전략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 내부의 갈등을 야기할 아베정권의 대외정책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센까꾸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중일관계도 아베정권의 진로에 역작용할 것이다. 동아시아는 세계사적인 탈냉전기에 들어선 지금도 각국간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면서도 군사정치적 갈등의 가능성이 축소되지 않는 독특한 지역이다. 물론 그 갈등 구도는 중국과 미일 동맹 사이에 그어진 선으로 작동된다. 그런데 그 대립이 냉전질서가 해체된 지금도 존재하는 핵심적 이유는 미소간의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중국이란 요인이 냉전기로부터 지금까지 크게 작용하고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거기에는 단순히 이념과 체제의 차이만이 아니라 근대사의 산물인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깊은 불신과 증오가 쌓여 있다.


중일간의 이같은 역사심리적 분열은 한일간에도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한미일동맹의 안과 밖에 동시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지역적 특성을 알기에 미국이 일본 새 정권의 역사인식 후퇴를 적당한 수준에서 견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2013년을 새해에 전망하면서, 동아시아질서에서 한반도가 갖는 위치의 역사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작년에 7주갑(周甲)을 맞은 임진왜란(1592-1599), 그리고 그로부터 30년 뒤 발생한 정묘호란·병자호란이란 두 차례의 전쟁은 조선에게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전략요충의 지위에 있었다. 조선의 태도 여하에 따라 동아시아의 질서가 잘 유지될 수도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는 가능성이 모두 있었다. 이 점은 그 이후의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 그리고 한국전쟁(1950-1953)에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분단된 한반도의 위기상황이라는 동아시아의 변동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터이다.


동아시아 역사의 전환기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그토록 중요했지만 그때마다 한반도 주민의 주체적 역량이 부족해 한반도는 되풀이 지역질서의 분열을 초래했고 한반도는 처참한 피해자가 되곤 했다. 지금도 문제는 한반도가 그런 전략적 요충의 위치를 활용해 평화의 동아시아를 이룩하는 역할을 수행할 역량이 있는가이다.


2013년 동아시아에서는 국가주의를 노골화하는 일본 자민당정권의 등장으로 그에 대응하는 대항국가주의가 득세하는 악순환이 거세질 조짐이 보인다. 지역의 위기가 증폭할 때 그 중심에 늘 한반도가 놓여 있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2013년의 분단된 한반도가, 그 가운데서도 특히 대한민국이 이렇게 악순환의 위험에 직면한 지역질서를 선순환 쪽으로 돌릴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의 역동성에서 어느 정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75%라는 높은 투표율도 그렇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대의시키기 위한 자발적 활동 등에 20-30대 젊은층이 적극 참여한 것도 주목된다. 이 현상은 일본의 투표율이 59%로 정도로 전후 최저를 기록했고 젊은층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투표 당일 만난 일본의 지식인은 자민당이 43% 정도의 득표율(사실상 전체 유권자의 20%대의 지지)로 다수당이 된 것에 비하면 높은 투표율에다가 야당에 48%의 지지를 보내는 투표자가 있는 한국은 역동적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의 발언을 떠올리면 『아사히신문』 신년사설의 논조도 이해된다. 그러나 투표에서 자민당을 지지한 20%대 유권자 이외의 다수 시민과 연대해 국가개혁작업의 단기과제를 수행할 길을 찾지 않은 채 ‘국가의 상대화’를 강조하는 것으로는 비관적인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개혁 작업의 단기 과제를 수행하는 현장에서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중장기 과제를 수행할 동력을 얻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중장기 과제를 앞세울 때 불가피하게 추상화하고 관념화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 점을 가슴에 새길수록 2월에 출범할 박근혜정권이 ‘시대 교체’를 실현하겠다며 내세운 공약(남북관계 개선이나 경제민주화 등)의 확실한 이행을 확실히 다그치는 동시에 그를 지지하지 않은 48% 투표자가 희망했던 사회의 밑그림을 다시 정교하게 다듬고 구현하는 우리의 역할이 더 절실해진다. 국가주의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의 동아시아로 이끄는 2013년의 활로는 바로 여기서 열린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서남포럼, 201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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