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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박원순의 쓴소리단과 박근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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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1-25 16:53 조회21,6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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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 집무실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도시텃밭을 실험하기 위해 직접 푸성귀를 가꾸는 실내 온상과 두 벽면을 빼곡히 채운 시정 관련 파일이 먼저 눈길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쓴소리단’이란 제목의 파일이었다. 박 시장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책무를 받은 서울 시민과 공무원들의 쓴소리를 모아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지난해 구성됐다는 쓴소리단이 시정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당장 확인은 못했다. 다만 외부 위원에 따르면, 공무원 위원들도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직언을 거리낌없이 하는 분위기라니, 그 결과를 지켜봄 직하다.

사실 나랏일을 하는 공직자라면, 마땅히 쓴소리에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자신의 잘잘못이 그 개인에 머물지 않고 나라와 백성의 삶에 직결되는 까닭이다. 하여 동아시아의 유교권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언로를 중시해왔다. 특히 권력 분산과 견제를 통한 민본정치를 꿈꿨던 조선시대에는 간언을 업으로 삼는 사간원을 만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상소제도에, 임금 행차 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격쟁과 상언 같은 제도까지 두었다.

하지만 제도가 다는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대간 등 언관들이 사직을 위협하면서까지 집요하게 간쟁을 해도 전혀 듣지 않는 국왕이 있는가 하면 모욕에 가까운 직언조차 받아들이는 국왕도 있다. “전하께서는 오만하게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홀로 총명을 행하며 한세상을 하찮게 여기고 뭇 신하를 깔보아 대신을 종처럼 기르고 대간을 개와 말처럼 대하십니다. 분주히 종사하되 뜻에 따를 뿐이고 어기지 못하니 종이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속박되어 달리되 울면 쫓겨나니 개와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효종실록>에 실린 정언(正言) 이민서의 상소문의 한 대목이다. 비판의 신랄함에 식은땀이 날 지경이지만, 실록은 “상이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다”고 기록했다.

직언은 이렇게 듣는 이가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여야 의미가 있지만, 하는 것도 듣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명군과 직신(直臣)의 대표적 예로 거론되는 당 태종과 위징의 관계조차 때론 위태로웠다. <정관정요>에는 태종이 직언을 일삼는 위징에 대해 “내 언젠가 저 늙은이를 징벌하고 말겠다”라고 역정을 내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화를 푼 것은 황후가 “자고로 군주의 이해심이 넓어야 강직한 신하가 나온다고 했는데 위징이 감히 직언을 올린다면 이는 폐하의 인덕이 넓다는 뜻이니 경하드린다”고 한 연후였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 5년의 실패는 이 대통령이 쓴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감사원 감사로 밝혀진 4대강 사업의 재앙적 결과가 단적인 예다. 이 대통령이 4대강 사업계획을 내놓았을 때,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의 감사 결과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귀를 닫았다. 대통령이 이러니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4대강 사업을 위해 내달렸고, 정권과 야합한 언론은 비판기능을 포기했다.

어쨌거나 그 이명박 시대도 이제 한 달 후면 끝이 난다. 문제는 박근혜 시대가 이명박 시대와 다르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 당선인의 가장 큰 약점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이미지였다. 당선 후 한 달 사이, 그런 이미지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됐다. 보안을 강조해 인수위를 불통조직으로 만들고, 윤창중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를 대변인으로 고집하며, 이동흡처럼 공사도 구분 못 하는 이를 헌법재판소장에 지명하도록 용인한 것을 보면서 과연 그 주변에 제대로 된 조언자가 있는지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렇다고 지레 마음을 접을 일은 아니다. 박 시장처럼 쓴소리단까지 만들진 않더라도,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 쓴소리에 귀를 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의 5년은 이명박 시대 5년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 첫번째 시험대가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처리다. 불통의 지도자로 고착될 것인가, 아니면 열린 소통의 지도자로 진화할 것인가, 국민들이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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