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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선글라스 - 누가 가장 잘 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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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4-08 14:38 조회18,0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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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가 있다. 온몸과 머리와 얼굴까지 옷가지로 두른 채 오직 눈만 밖으로 내놓은 서아시아 지역 한 여자. 체코의 한 고성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서 춤추고 있는 마스크를 쓴 여자. 비키니에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즐기는 마이애미 해변의 한 백인 여자도 있다. 이 셋 중에 가장 자신을 잘 숨기고 있는 여자는 누구일까.

모든 `자기 은폐`의 본질은 이를 `행동의 자유`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할 때 잘 드러날 수 있다. 자기를 잘 숨길수록(숨을수록) 그 자신은 행동의 자유가 커질 것이다. 예컨대 도깨비감투나 투명인간 같은 자기 은폐에 대한 이야기는 규율과 금기를 넘어서려는 인간 행동(자유)의 심리학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첫 번째 여자가 가장 자신을 못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기 신체를 가장 많이 가렸지만 그 복장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질서에 대해 어딘가 방어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그 질서를 위반하는 어떤 행동의 자유도 확장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여자는 얼굴만을 가렸으나 자기 은폐에 상당히 성공한 모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스크를 쓴 가면무도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성(性)적 파트너를 바꾸는 합법적 일탈 놀이며, 마스크는 이 일탈에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놀이 도구다. 의적 쾌걸 조로나 탈레반 같은 정치적 반군들이 현대식 마스크를 쓰는 것도 마스크가 지닌 사회적 일탈과 금기 위반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한 예다.


그렇다면 선글라스를 쓴 여자는? 여기에서는 각도가 조금 달라진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녀의 시선을 `우리`가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선글라스에서 발생하는 이 시선의 메커니즘은 그녀의 시선을 볼 수 없는 우리에게 기묘한 불쾌감과 불안감과 억압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비키니를 입은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의 전능성을 획득한다. 그녀는 거의 전라를 노출하고 있지만 실은 완전히 숨었다.

 
 선글라스에 대한 우리의 매혹도, 그걸 쓸 때 느끼는 기묘한 쾌감과 우쭐함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최초의 현대식 감옥을 설계한 제러미 벤섬의 완벽한 원형 감옥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빅브러더가 지배하는 세계도, 어떤 면에서는 CCTV로 가득 찬 오늘날 지구도 이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 시선의 메커니즘을 `자유`가 아니라 `권력`이라고 고쳐 말했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mk뉴스, 2013.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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