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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대구여,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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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2-24 16:15 조회23,9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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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TK 출신 지식인의 고백

대선 전날 오후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깊은 감회에 휩싸여 있다. 원래 필자는 지난 일요일 열린 대선 후보 3차 토론에서 거론된 반값등록금 문제 및 사립학교법과 영남대를 둘러싼 두 후보 사이에 논쟁에 대해서 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자 대구출신으로서의 자의식과 고향의 추억 등이 뒤얽히면서 내 마음속의 풍경은 자못 어지러워졌다.

우선 논쟁 중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그냥 넘어갔지만, 등록금이 지금처럼 고액으로 치달은 원인이 참여정부에 있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지적은 정확하지는 않다. 사립대 등록금 폭등은 1990~1996년까지 즉 노태우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 사이에 일어났으며, 참여정부에서 크게 인상된 것은 국공립대 등록금이다. 사립대 재학생이 전체 대학생 수의 80%가 넘고 등록금도 국공립의 두 배 수준임을 고려한다면, 고액등록금을 참여정부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물론, 과거 책임이 어디에 있든 왜 현 정부가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도 실천하지 않았느냐는 문재인 후보의 질문이 초점이긴 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지금처럼 사학이 난립하면서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근본원인은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선언으로 대학 간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도입되면서인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더 심각하고 그릇된 인식은 등록금 인상을 비롯한 사학운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립학교법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한 대목이다. 이것은 현재 사립대학들이 거의 모든 운영비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족벌지배로 고질적인 사학비리를 양산하거나 무리한 학사간섭으로 분규를 야기해왔다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4대 개혁입법 가운데 하나로 추진된 사립학교법 개정은 사학의 난립과 부정 및 비리가 극에 달하여 대학들에서 분규가 빈발하던 시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조치로 국민의 대다수가 찬성한 사안이다.


사학재단에 절대적인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한 결과 등록금은 높아만 가고 재정비리 등 사회문제가 터지면서, 사학경영의 투명성과 대학교육의 민주성을 높여야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립재단 측의 반발과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밀린 결과 이 개혁법은 제대로 시행도 되기 전인 2007년 재개정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야당대표이던 박근혜 후보가 이 모든 개혁조치를 체제부정세력의 교육장악 시도라는 색깔론을 펴면서 가두시위에 앞장섰던 것은 유명하다.


영남대를 둘러싼 후보들 사이의 논란도 결국 박근혜 후보가 영남대와 현재 어떤 관계인가에 달려 있는데, 영남대가 군사정권 시절에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하여 국가에 헌납된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수년 전까지만 해도 영남대의 정관 제1조에는 박정희가 '교주'로 되어 있었고 논란이 일자 '설립자'로 명칭을 바꾸었다. 박근혜 후보가 젊은 나이에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영남대의 이사장이 된 것도, 입시부정 등 비리로 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현 정권의 구재단 복귀정책에 힘입어 다시 종전이사 자격으로 이사회의 다수를 추천한 것도 이미 알려져 있다.


더 되풀이할 것은 없지만, 영남대의 구재단 복귀를 필두로 전국 10여개의 분규대학들에서 분규로 쫓겨났던 족벌재단이 차례로 복귀하여 대학뿐 아니라 사회 정치문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권력자 시절에 획득한 사학을 그 자손이 승계한다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이 상식이 영남대의 경우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영남대학교 교수회가 현 이사진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나 대구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필자의 착잡한 심정은 사실 이 대목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만약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어떤 대통령이라도 재직 시에 권력을 이용해 대학을 헌납 받고서 퇴임 후에도 그것을 자기의 소유라고 주장한다면, 누군들 용납이 되겠는가? 그러나 주변에 이런 말이라도 꺼내면 소수로 몰리고 경원시되는 대구정서란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지고 보면 이 대구풍토니 정서란 것도, 박정희 정권이 수십 년 유지되는 가운데 부추겨지고 고착되었다 뿐이지 대구라고 해서 원래부터 보수적이고 무조건 기득권 편에 서는 특별한 인간들이 사는 곳은 아니다.


다만 수십 년 내려오는 지역정서의 굳어진 틀에 갇혀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어떤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상식조차 있는 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집단정서 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다. 대구시민들이 문득 꿈에서 깨어나, 왜 영남대가 전임 대통령의 사유물이지? 대통령직을 물러나면 국가에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질문하는 순간, 상식도 살아나고 대구정서의 그 굳은 구조도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대구 태생으로 영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중고등학교시절을 대구에서 보냈고 지금도 가족들이 대구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TK 출신이다. 스스로 "금호강에서 뼈가 굵었다"고 자랑도 하지만 고향에서의 추억은 지금도 나의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구출신 권력자들이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억압해오는 동안에는 TK라는 꼬리표가 전혀 달가운 것이 될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그런 시절에는 동문회도 가기가 꺼려졌다. 그러면서도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TK의 힘에 기대는 심정이 마음 한구석에 없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할까? 물론 이 내면의 욕망이 오히려 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늘 되돌아보게 만들었지만, 그 권력이 다시 복귀할 수도 있는 선거를 눈앞에 두고 이 글을 쓰는 착잡함도 여기서 나오는지 모른다. 대구여,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프레시안, 201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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