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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한번 삐끗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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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3-04 17:04 조회20,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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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장 발장의 억울한 사연은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 동안 징역을 산 것이라 알려져 있다. 물론 범죄의 내용에 걸맞지 않게 무거운 형벌도 억울한 일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얼마 전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는 장 발장이 겪어야 했던 또다른 부당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장 발장은 법이 정한 대로 가는 곳마다 가석방 문서를 제시해야 했는데, 그러고 나면 일자리는커녕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서 잠자리조차 구할 수 없었다. 차라리 감옥에서 내주질 말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한번 잘못에 이미 죗값을 과하게 치른 후에도 발붙일 곳 없는 사회의 그 비정함이 끔찍했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마음잡고 새 인생 살자면 마들렌 시장으로 변신한 장 발장처럼 아예 신분세탁이라도 해야 가능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에 대해서 그 처벌과 관련된 내용을 학생부에 적어 5년까지 보관하도록 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교원에 대해서는 징계를 하겠다며 밀어붙이는 중이었는데, 최근까지 학생부 기재를 거부하던 경기도교육청마저 부분적으로 수용을 결정하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처가 학교폭력의 해결 방안으로서의 유효성은 일단 제쳐놓고서라도,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진학과 취업에서 자료로 활용되는 학생부에 가해와 처벌 사실을 등재함으로써 가해 학생에게 확실하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사고 그 자체이다. 최근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교육정책과 사회 및 가정의 여러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차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실제로 단순히 학생 개인 인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아직은 교육과정 내에 있는 학생들로부터 앞날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야구로 말하면 스트라이크 한번으로 아웃당하게 생긴 사정은 우리 사회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가진 자들에게 베푸는 끝없는 기회와 비교하면 더더욱 억울하게 다가온다. 최근 공직 후보자들을 둘러싼 연이은 논란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농담처럼 자식이 군대를 갔다 와서, 세금을 꼬박꼬박 내서, 국적이 하나라서, 투기를 못 해봐서 자신은 장관 되기 틀렸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일일이 문제를 삼다가는 공직을 누가 맡겠느냐, 그 자리까지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런 문제로 인생 전부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들은 보통사람이 하나만 저질러도 무사하기 어려운 “실수”를 거푸하고도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고위직에도 오르는 신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란 가진 자의 특권일 뿐이고, 보통사람들에게 인생은 한번의 방황이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 살얼음판이 된다.

가위바위보에도 삼세판이 있다는데,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하면서 낙인과 징계를 중심에 두어선 곤란할 것이다. 가해자건 피해자건 결국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 아닌가. 등굣길 버스에서는 친구가 네 공부 대신해 주느냐, 자칫 우정 그따위 것 찾다가는 인생 돌이킬 수 없다는 사교육업체의 협박 광고를 봐야 하고, 그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학교는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는 학생들이 다시 시작하는 데 도움은커녕 족쇄를 채우는 것이 현실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 한번 실수로 지위와 명예를 잃는 것에 대해선 안타까워하면서, 누군가가 그보다 더 중요한 ‘다시 시작할 기회’를 영영 잃는 것에 대해서 무감해서야 되겠는가. 어찌되었든 누구만 원 스트라이크로 아웃시키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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