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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기미독립선언서의 이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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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3-11 13:32 조회20,6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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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94주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한국, 중국, 일본에 북한, 미국, 러시아까지 무려 여섯 나라 모두에 새 정부 또는 새 지도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의 지리한 교착국면이 좀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긴장이 빠르게 확산되는 위기국면이다. 와중에,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개혁을 핵심의제로 출범한 동북아시아 각 나라의 정치도 구태를 면치 못한다. 나라 사이[國際]의 분쟁이 나라를 가로지르는 민간교류[民際]조차 제한함으로써 기어이 나라 안의 개혁을 저해한 경우가 적지 않은바, 심지어는 나라 안의 민주주의 모순을 ‘싼 민족주의’로 보전(補塡)하려는 정치적 유혹에 곧잘 투항하곤 하던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을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오랜만에 기미독립선언서를 다시 읽는다. 3.1운동(1919)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문헌인 기미독립선언서는 기념식 때 낭독되는 고문서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 때로는 기초자의 신원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비판도 제기됐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친일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기초자가 민족대표에 서명을 사양한 점은 심각한 문제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그런 인사에게 기초를 맡길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미 검토까지 끝난 상태라 부득이 접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걸 보면 서명의 책임에서 도타(逃躱)한 육당 스스로 기초자의 명예를 반납했다고 해도 하릴없다.


때로는 ‘조선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후일 친일로 돌아선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 문서의 의의에 의문을 던지는 논의도 일곤 했다. 물론 33인 모두 변절로부터 보호되었다면 작히나 좋으랴만,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연좌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일은 자제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친일이다가 나중에 항일로 나아갔다고 앞의 친일에 면죄부를 발행할 수 없듯이, 처음에 항일하다가 나중에 친일로 훼절했다고 앞의 항일까지 지우는 일 또한 악착하다. 더구나 공포의 무단통치시기에 민족대표로 나서는 일이 지닌 천금 같은 압력을 생각할 때 1919년의 33인은 그 역사적 시간 속에서 전적으로 옹호된다. 시간의 분절성을 그 연속성만큼이나 존중하는 태도는 간난한 한국사 최고의 교훈일지도 모르거니와, 더 나아가 33인의 대표성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론도 제기되었다. 33인이 운동의 원점인 탑골공원에서 민중과 함께하지 아니하고 따로 선언식을 가진 뒤 스스로 연행된 일은 확실히 지목될 만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 민족자결주의란 게 1차대전 패전국 식민지들에만 적용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시 전승국으로서 승승장구하던 일제에 반대해 독립운동을 조직한 일 자체가 대단한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터이다.


만약 지도부가 취약했다면 그것은 민족부르조아지의 성장이 지체된 당시 조선의 단계를 반영한 것이지 그들에게 전적으로 귀책될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3.1운동은 민중의 자발성과 지속성에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그대로인지라, 지도부의 취약성이 오히려 운동의 놀라운 팽창을 야기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짚을 만하다. 다중의 울퉁불퉁한 참여로 비대칭적으로 발전한 이 거대한 운동은 과연 한국근대의 원상(原象)이요, 이후 모든 운동의 생생한 영감(靈感)으로 스스로 정위(定位)된 바다.

과연 기미독립선언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씨지인가? 혹자는 그 어려운 한자투성이문체의 낡음을 비판한다. 한문은커니와 한자 문맹이 심각한 오늘의 세태에 비추면 그럼직도 하지만, 선언서의 그 힘찬 첫 문장 “吾等(오등)은玆(자)에我朝鮮(아조선)의獨立國(독립국)임과朝鮮人(조선인)의自主民(자주민)임을宣言(선언)하노라”를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로 풀어버리면 웬지 기세가 급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이 역사적인 문건의 장중한 국한문혼용체를 그 한계까지 안아서 지지한다. 선언서는 3.1운동이 한국계몽주의의 대합창이듯이 한국계몽주의 최고의 대문자다. 바쁜 사람은 ‘조선이 식민지가 아니라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노예가 아니라 자주민’임을 대뜸 선포한 첫 문장만으로도 느낌의 현재가 충만할 터, 바로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며 거리로 뛰어나가지 않을 수 없게 우리의 마음과 몸을 흔드는 것이다.


선언서가 지나치게 일본에 관대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데, 고도의 논술전략을 간과한 탓이다. 가령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以來(이래)時時種種(시시종종)의金石盟約(금석맹약)을食(식)하얏다하야日本(일본)의無信(무신)을罪(죄)하려안이하노라”에서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배신한 일본을 단죄하지 않겠다는 이 문장은 속뜻과 겉뜻이 어긋나는 전형적인 반어(反語)다. 그럼에도 한편 반어만은 아니다. “嚴肅(엄숙)한良心(양심)의命令(명령)으로써自家(자가)의新運命(신운명)을開拓(개척)”하는 일이 이 운동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他(타)의怨尤(원우)를暇(가)치못하노라”, 남 탓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야말로 고도의 창조적 비판이다.

더구나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부응한 조선의 독립이 조선만을 위하는 민족이기주의의 소산이 아님을 밝힌 대목은 압권이다.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의 “正當(정당)한 生榮(생영)”을 보장하고,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자에서 “東洋支持者(동양지지자)”로 변화시키고, 중국의 공포를 풀어줌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로 인도하느니, 이는 나아가 “東洋平和(동양평화)로重要(중요)한一部(일부)를삼는世界平和(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국제주의적 안목이 약여한바, 안중근(安重根)의 동양평화론을 계승하여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으로 이어진 우리 동아시아론의 맥락이 성성하다. 1차대전 직후 고조된 국제적 이상주의가 도덕정치에 기초한 동아시아연대론과 만난 교차점에서 솟아난 조선독립론으로서, 분쟁하는 한반도를 남과 북은 물론 주변 4강도 함께 교통하는 중립적 나루터로 변신케 할 평화통일의 길조차도 머금은 지혜의 담론이 아닐 수 없다.


“양심(良心)이아(我)와동존(同存)하며진리(眞理)가아(我)와병진(竝進)하는도다”라고 세계만방에 당당히 고할 수 있었던 이 도저한 이상주의가 남과 북의 모태라는 점을 상기컨대, 졸렬한 수사(修辭)로 으르렁거리는 남북의 현상이 슬프다. 남 탓하지 말고 남과 북의 정치가 아무 조건 없이 우리의 근원인 3.1운동과 기미독립선언서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여 마땅하거늘, 그 번개 같은 회심(回心)이 아득타.

최원식(인하대 인문학부 / 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포럼, 201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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