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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안보위기, 먼 산의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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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3-18 14:36 조회20,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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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쟁 나는 거 아니죠? 무서워요!”

북한이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남쪽에 대한 말 공격의 강도를 갈수록 높여나가고 있던 지난 주말,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북한이 사용한 공격 언어의 강도와 그에 대한 프랑스 언론들의 보도가 당장에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급박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위협의 직접 대상이 된 한반도 남쪽의 주민들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북한이 정전협정이 무효화됐다고 선언한 11일 정부와 군은 북의 위협에 대응 강도를 높여갔지만, 대다수 남쪽 주민들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주식시장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남과 북의 지배 세력들이 상호 대립과 공모에 의해 한반도의 민중을 지배해온 분단체제가 빚어낸 위기의 일상화 탓이 클 터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4개 정권에 걸쳐 대북 문제에 간여했던 한 예비역 장성은 이런 반응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은 1990년대 이래 가장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다. 물론 그를 위시한 어느 전문가도 지금 상황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 전면전을 생각한다면 개성공단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예전 틀의 반복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정전협정을 무효화한다고 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전면전 재발을 막아온 것은 정전협정이 아니라 군사적 힘의 균형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이제 핵을 갖고 있다. 핵무기는 실전용이라기보단 억지용이지만, 핵무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북한이 한층 대담하게 행동할 위험이 있다. 더군다나 북한을 지배하는 것은 갓 서른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다. 그에게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회함이 없다. 중국이 한 당사자인 정전협정을 중국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무효화할 정도로 보폭이 크다. 핵실험과 로켓 발사 등을 통해 그에 대한 군부의 입김도 커진 듯하다. 군은 세력 확대를 위해 긴장을 야기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고 위험한 북한에 적절히 대응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해선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사태의 위중함을 각별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이익이 걸려 있지만, 우리만큼 사활적이진 않다. 우리의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도 북한 핵 문제를 위시한 한반도 안보위기 해결에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 ‘안보는 산소와 같아서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더 늦기 전에 근원적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창의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을 마련하고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관련국들을 설득하는 등,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그런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안보 진용부터가 믿음직스럽지 않다. 군 관계자들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야전 출신으로 전략 마인드가 부족하고,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작전 전문가지만, 청문회에서 드러난 수많은 도덕적 하자로 만신창이가 돼 군을 제대로 지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의 이런 인사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 한 장관은 “안보를 단순히 군사로 생각하는 60~70년대식 인식의 반영”이라며 우려했다. 이런 안팎의 우려를 안다면 폭넓게 의견을 듣고 활용하겠다는 열린 태도라도 있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론 그것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반도 남과 북의 주민들이 위정자들의 처분만 바라보며 지금처럼 위기를 나 몰라라 해선 안 될 일이다. 이 땅의 진정한 주권자는 권력을 위임받은 위정자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에 단호히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세력과 폭넓게 연대·협력함으로써 평화로운 한반도 질서를 확립하는 일, 그것이 위기의 시대를 맞은 이 땅의 주권자인 우리들의 책무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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