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혁] 기초연금 공약의 정치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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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3-18 14:43 조회19,7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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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5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문재인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방송 3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후보는 5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 집단에서 전체 유권자 수(4047만명) 대비 4.3%와 7.3%에 달하는 표차를 낼 수 있었다. 문 후보는 20대 이하, 30대, 40대 유권자 집단에서 전체 유권자 수 대비 각각 3.8%, 4.9%, 2.0%의 표차를 냈지만, 박 후보에 대한 고령층의 지지를 극복할 수 없었다.
대선 당시 고령층을 겨냥한 박근혜 후보의 핵심공약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형태로 알려진 기초연금의 도입이다. 박 후보의 대선공약집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등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아 노인계층의 삶의 질이 낮은 상태이지만, 1988년에 도입되어 적립 기간이 짧은 국민연금이나 2012년 기준 월 9만4600원에 불과한 기초노령연금은 노인빈곤 해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문제의 해법으로 박 후보는 ‘기초노령연금 및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하며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노인과 중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를 지급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처럼 파격적인 공약은 사회복지 전문가와 언론이 나서 노인빈곤 해소 수단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해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이 타당한지 등을 검증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대선 당시 침묵을 지켰던 일부 전문가와 언론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제 공약은 잊어버려라’는 조언을 했다. ‘선거에 이기려면 무슨 약속인들 못하겠느냐만 선거에 이긴 다음엔 부담스러운 공약은 없던 일로 하자’는 이른바 ‘먹튀’ 행태를 권고한 것이다. 다행히도 박근혜 대통령은 비록 기초연금이 엄밀한 분석과 치열한 논쟁 끝에 만든 공약은 아니기 때문에 문구 그대로 이행할 수는 없지만, 복지 확충을 통해 노인빈곤을 해소하겠다는 공약 취지는 지키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 기조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지급되는 경로수당(기초연금), 빈곤 구제를 위해 지급되는 공공부조(기초노령연금), 그리고 보험 가입과 적립을 전제로 배분되는 사회보험(국민연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부터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노인빈곤 해소가 진정한 목표라면 소득을 따져 노인 빈곤층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무차별적인 경로수당 형태의 기초연금 도입은 재검토돼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인정액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노령연금은 월 급여수준이 낮기도 하지만, 동거 자녀의 소득과 재산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는 개인, 가족, 국가의 책임에 대한 철학과 연관이 있는 문제로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동거 자녀의 소득과 재산을 고려하여 빈곤 여부를 판단하되 가족 부양에 대해서는 조세 혜택을 일부 부여하고 빈곤층에 대한 월 급여수준은 상향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0년 도입 당시 복지병이 만연될 것을 우려해 부양의무자 규정을 포함시켰던 기초생활보장법도 실제 동거 가족의 소득과 재산만을 감안하는 방향으로 개정한 후 기초노령연금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면 보험가입자들이 돈을 내고 돈을 받아가는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하여 보험미가입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비록 공약 문구와는 다르다고 해도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무차별적인 경로수당은 배제하고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으로 이원화하여 빈곤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을 지지할 것으로 본다.
임원혁(KDI 글로벌경제실장)
(경향신문, 20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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