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정치적 책임과 민주당 대선평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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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4-17 14:43 조회18,3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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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결과를 공표한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 위원으로 일하며 절감한 것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다른 당 경험은 없으니 민주당에 한정하자면, 그들은 정치적 책임을 논하는 걸 싫어하고, 실명을 들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며, 정치적 행위와 책임의 관계가 비례적이지 않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책임지기 싫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세번째 문제를 걸어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게 큰 문제다. 어떤 결정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말하면, “그게 정치적 책임을 질 만큼 큰 잘못이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런 말에는 잘못한 만큼만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배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사소한 행위가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경우들이 있다. 그 경우 행위의 관점에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결과의 관점에서 물을 수도 있다. 보통은 둘 다 고려한다. 일례로 사소한 운전 부주의로 남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힌 경우, ‘사소한’ 부주의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순 없다. 하지만 중대한 법규 위반이 아니면 형사처벌까지 하지 않는다.
정치는 어떤가? 정치는 전적으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엄격한 영역이다. 그 이유는 정치적 행위의 본질이 ‘지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지도자이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방향으로 나아간 공동체가 실망과 좌절에 직면할 경우, 지도자가 “내가 좀 잘못 생각했나 봐” 또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고 슬쩍 넘길 수는 없다. 개인 생활과 달리 정치에서는 어리석음마저 악행이며,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행위와 책임의 관계는 비례적이지 않다.
이런 불비례성은 나쁜 일에만 있진 않다. 정치적 성공은 맥락을 살펴보면 많은 이의 힘이 보태진 결과이다. 하지만 그 영예는 지도자가 독식하다시피 한다. 그리되는 이유는 지도자의 방향 설정 몫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도자 자리 자체가 공동의 작업을 대의하고 거기에 초점을 부여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작은 행위가 큰 영예를 가져다줄 수 있으며, 그 면에서도 행위와 결과의 관계는 비례적이지 않다. 정치적 책임은 이런 정치적 영광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영예는 추구해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비근한 예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야권 지지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런데도 민주당 정치인 중에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이는 김부겸 전 의원 한 사람뿐이다. 민주당 내부로 들어가보면 선대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책임이 웬 말이냐는 식이다. 그런 이가 선거 결과가 나쁠 때 책임을 마다하듯 결과가 좋았을 경우 주어질 영예도 마다했을까? 그때 그 결정이 정치적 책임까지 질 일은 아니지 않으냐는 항의도 듣게 된다. 일이 잘됐으면 그 결정에 비해 커다랬을 과실을 마다하지 않았을 이들이 일이 잘못되니 행위와 책임 간의 적정한 비례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평가위 보고서도 채택 과정에서 갈등은 결국 대선 패배의 책임 소재를 어느 선까지 명백히 실명으로 제시하느냐에 집중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 직전까지 실명을 빼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관찰자 자리에서 한국 정치에 대해 개탄하고 냉소하는 것이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평가보고서를 정치적 저의를 가진 것으로 비난할 뿐 “내 탓이오” 하며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정치인이 민주당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대선 직후 ‘회초리 투어’를 “쇼 아냐?” 하며 빈정거린 사람들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종엽(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4. 10.)
책임지기 싫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세번째 문제를 걸어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게 큰 문제다. 어떤 결정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말하면, “그게 정치적 책임을 질 만큼 큰 잘못이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런 말에는 잘못한 만큼만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배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사소한 행위가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경우들이 있다. 그 경우 행위의 관점에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결과의 관점에서 물을 수도 있다. 보통은 둘 다 고려한다. 일례로 사소한 운전 부주의로 남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힌 경우, ‘사소한’ 부주의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순 없다. 하지만 중대한 법규 위반이 아니면 형사처벌까지 하지 않는다.
정치는 어떤가? 정치는 전적으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엄격한 영역이다. 그 이유는 정치적 행위의 본질이 ‘지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지도자이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방향으로 나아간 공동체가 실망과 좌절에 직면할 경우, 지도자가 “내가 좀 잘못 생각했나 봐” 또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고 슬쩍 넘길 수는 없다. 개인 생활과 달리 정치에서는 어리석음마저 악행이며,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행위와 책임의 관계는 비례적이지 않다.
이런 불비례성은 나쁜 일에만 있진 않다. 정치적 성공은 맥락을 살펴보면 많은 이의 힘이 보태진 결과이다. 하지만 그 영예는 지도자가 독식하다시피 한다. 그리되는 이유는 지도자의 방향 설정 몫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도자 자리 자체가 공동의 작업을 대의하고 거기에 초점을 부여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작은 행위가 큰 영예를 가져다줄 수 있으며, 그 면에서도 행위와 결과의 관계는 비례적이지 않다. 정치적 책임은 이런 정치적 영광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영예는 추구해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비근한 예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야권 지지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런데도 민주당 정치인 중에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이는 김부겸 전 의원 한 사람뿐이다. 민주당 내부로 들어가보면 선대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책임이 웬 말이냐는 식이다. 그런 이가 선거 결과가 나쁠 때 책임을 마다하듯 결과가 좋았을 경우 주어질 영예도 마다했을까? 그때 그 결정이 정치적 책임까지 질 일은 아니지 않으냐는 항의도 듣게 된다. 일이 잘됐으면 그 결정에 비해 커다랬을 과실을 마다하지 않았을 이들이 일이 잘못되니 행위와 책임 간의 적정한 비례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평가위 보고서도 채택 과정에서 갈등은 결국 대선 패배의 책임 소재를 어느 선까지 명백히 실명으로 제시하느냐에 집중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 직전까지 실명을 빼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관찰자 자리에서 한국 정치에 대해 개탄하고 냉소하는 것이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평가보고서를 정치적 저의를 가진 것으로 비난할 뿐 “내 탓이오” 하며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정치인이 민주당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대선 직후 ‘회초리 투어’를 “쇼 아냐?” 하며 빈정거린 사람들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종엽(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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