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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새정치선언과 민주주의의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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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1-14 15:56 조회21,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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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가 사실상 결정됐다. 미국에선 지난 7일 선거를 통해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중국은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내부 토론과 검증을 거쳐 이미 합의한 시진핑 부주석을 곧 차기 당 총서기로 선출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이렇게 서로 다른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을 두고 각각 자신들의 강점을 주장하며 상대방의 제도를 비판한다. 미국은 다당제하의 보통선거만이 민의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중국은 이른바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를 통해 지도부를 선출함으로써 지난 60년간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랑해왔다. 하지만 민주란 관점에서 보면 두 제도 모두 한계가 분명하다.

중국 체제의 한계는 보시라이 사태나 원자바오 총리의 부패 추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집단지도체제라곤 하나, 견제와 균형이 없는 1당의 권력독점은 지도층 내부의 암투와 부패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국민이 지난 30년간 이룩한 경제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권력을 등에 업은 약탈자들에게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도 이런 권력독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 결과 중국은 사회주의란 이름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극심한 격차사회로 변모했다. 이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는 거의 5분마다 한 건씩 일어난다는 집단시위로 나타나고 있다. 공산당은 특권화돼 정부 관리 등 엘리트들이 다수를 점하고 중국 인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의 비중은 30%에 지나지 않는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등 28헌장 주도세력이 중국은 말로는 인민민주를 주창하지만, 실제는 당 천하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를 위시한 당내 민주파도 당의 권력독점을 폐기하는 정치개혁 없이는 중국 사회는 궤멸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서구 민주국가의 대표를 자임하는 미국의 제도가 그렇다고 나은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의 저자 로널드 드워킨은 “미국 정치는 끔찍한 상태”라고 개탄한다. 양대 정당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사회 전체를 극렬한 의견대립의 장으로 만들어, 정치가 전쟁처럼 돼버렸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장 직면하고 있는 재정절벽 문제가 단적인 예다. 선거가 민의를 투명하게 반영하지도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본가 등 이익집단이 그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선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다 보니 1인 1표가 아니라 1달러 1표가 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선, 투표장에 안 나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가는 사람의 상당수조차, ‘정치적 실향민’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에 터잡은 채 대립만 일삼아온 기존 정당과 왜곡된 언론지형 탓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분열됐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정당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해내지 못하고, 대립이 아닌 공동선을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은 정치적 실향민 처지가 돼버렸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 정치적 실향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치적 양극화와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새정치 공동선언을 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 국민에게 책임지는 정치로 국민을 정치의 주인 자리에 복권시키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양 진영이 합의한 새정치의 기본원칙은 ‘협력과 상생의 정치’, ‘민의를 올바로 대변하고 민생을 책임지는 삶의 정치’다. 아직 세부안이 다 나오진 않았지만 기본 방향은 옳다.

중요한 것은 선언의 기본정신이 단일화를 넘어 대선 이후까지 지속될 국민연대의 튼튼한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단일화 협상 단계부터 양 진영은 작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협력·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혼신을 다해 공정한 규칙을 만들되 어느 쪽도 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또 지더라도 기꺼이 협력함으로써 기어이 삶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일 때 국민은 감동으로 화답할 것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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