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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영리병원만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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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1-12 12:31 조회21,3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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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는 지난 10여년 동안 밀어붙여 오던 의료 영리법인 설립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경제자유구역에만 ‘예외’적으로 설립되는 것이므로 건강보험 체계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말로는 떳떳하다면서도 해묵은 사회적 논쟁거리를 꼼수로 은근슬쩍 처리해 넘긴 솜씨는 당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진부하다.

그런데 사실 진부하기는 영리병원에 대한 야권의 반대논리도 마찬가지다.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 참여정부라는 기원 논쟁은 일단 제쳐놓기로 하자.) 영리병원은 의료 양극화와 위화감을 조장할 것이며, 결국 건강보험 체계를 붕괴시킬 것이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대신 국공립 병원을 증설하여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반대 주장의 골자라 할 수 있다. 큰 틀에서야 공감하는 바이지만, 현재 국공립 병원의 실태를 보면 그 수를 늘려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에 한국 의료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는지 의심스럽다. 유일한 국립 종합병원이었던 국립의료원은 지난해 적자 경영을 이유로 법인화된 뒤 부지 매각 및 이전 결정이 난 상태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돈만 잡아먹는” 공공의료 대신 의료산업단지나 의료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기관들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고, 적자 폭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사실 한국의 ‘비영리법인’ 병·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영리병원 반대가 새삼스러울 지경이다. 국내 유수 재벌들은 거의가 이미 대형병원을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영리병원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매출경쟁, 불필요한 진료,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삭감, 수익에 따른 진료 분야 결정, 환자 거부 등은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일각에서는 영리병원의 내국인 이용을 제한하고 의료관광 목적으로만 운영하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의료 선진화나 의료산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시각이다. 그러나 최근의 의료인류학 연구들은 의료산업화나 의료관광 문제를 단지 효율성과 가격 대비 성능, 경쟁력과 같은 잣대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의료관광에는 저렴한 의료비뿐만 아니라 안전성이 확립되지 않은 실험적 치료, 성전환 수술이나 성형수술처럼 남의 눈을 피하고 싶어하는 치료 등도 중요한 유인 요건이 된다. 사실 장기매매, 대리모같이 한 나라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가능한 일들은 의료관광의 매우 중요한 동인이다. 건강검진 같은 분야는 불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돈 되는 분야로만 우수 의료인력이 몰리게 만드는 문제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의료를 ‘선진화’하고 국제화하자는 요구가 나오는 것은 현재 한국 의료가 처한 난맥상 때문이기도 하다. 불만스러운 의료에 지친 국민들은 차라리 외국 의사를 수입해 ‘경쟁’을 붙이자고 하며, 의사들은 거추장스럽고 수익은 나지 않는 국민건강보험 체계와 국가의 ‘부당한’ 규제에서 벗어나 ‘민영화’를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의료선진화의 방향이 영리병원을 기본으로 하는 산업화만은 아니며, 민영화는 국민이 주체가 되는 ‘민영’이 아니라 자본의 ‘사유’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논의에 불과하다. 생명을 담보로 폭리를 취하거나 뭔가 수상쩍은 일을 벌이지 않는 한 의료에서 큰 이윤을 내는 일은 어렵고 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의료를 산업화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현실이 불만스럽다고 시장에 기대는 악수는 이제 그만둘 때도 되었다. 애초에 의료자본은 공정에 관심이 없다. 그것이 영리병원이 문제지만, 영리법인만이 문제는 아닌 이유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한겨레, 201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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