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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책과 공약의 개념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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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1-23 14:55 조회21,3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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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은 쏟아져 나오지만 널리 회자되는 것도, 논쟁되는 것도 없다. 단편적인 공약들을 관통하는 정신이나 개념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개념은 공약의 정신과 배경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다. 현실이 어떠한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문제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등. 개념은 대중이 오랫동안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한 해명이자, 단순화·구조화된 문제 진단이다. 이는 일종의 얘기(스토리)라서 이해하기 쉽다. 보통사람도 비판하고 보완할 수 있다. 당연히 호프집이나 커피자판기 옆에서 화제가 된다. 요컨대 개념이 건물의 초석, 기둥, 외벽 같은 골조라면 공약은 방, 가구, 벽지다. 개념으로 꿰어지지 않는 공약들은 노상에 방치한 가구처럼 금방 훼손된다. 집권 후에 장애물을 몇 번 만나면 바로 변질되거나 흐지부지된다.

공약을 내놓기 전에 그 모태인 개념이 맞는지를 따져야 한다. 가장 먼저 할 것은 한국의 부가가치(GDP) 생산·분배 구조와 격차(인센티브) 구조 분석이다. 산업연관표와 고용노동 통계를 연계하여 ‘파이’가 어디서 생산되어 어떻게 분배되는지, 각 직능의 임금 등 처우가 1인당 지디피(대략 월 200만원)의 몇 배가 되는지를 따져보고, 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해보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재벌 대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조선·자동차·반도체·휴대폰 등 소수 수출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매출이익의 변동이 심하다. 무역 자유화와 중국 인접 효과, 노조와 불공정거래 효과 등이 겹쳐 고용과 부가가치의 낙수효과가 많이 줄었다. 높은 수출(소수 품목) 의존도 및 변동성과 낮은 낙수효과는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불안·불만의 주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수출을 줄일 수는 없는 법.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수출 부문과 권력(규제) 부문이 너무 많은 파이를 가져간다. 전자의 수혜자는 재벌 대기업 및 제조업과 울산, 거제, 포항, 창원 같은 도시다. 후자는 공무원, 교사, 공기업뿐만 아니라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산업이다. 부동산 불로소득과 노조는 주로 이 두 부문에 올라타 있다.

공공부문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조직노동자는 수는 적지만 힘은 세다. 그런데 노동의 양·질(직무, 직능)에 상응하는 적정한 처우가 선진국의 토대라는 인식이 없다. 처우는 기업의 지급능력과 노조의 교섭력 혹은 공공부문의 정치력의 함수로 되어 있다. 직능 간 격차가 과도할 뿐 아니라 불합리하다. 바로 여기서 살인적인 진입(시험 사다리 타기) 경쟁과 격렬한 구조조정 갈등과 비교우위 산업의 극심한 고용기피와 과도한 외주화가 나타난다. 수백만명은 아예 파이 나눔 판에 명함도 못 내민다. 이것이 낮은 고용률과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좁은 조세 저변과 거대한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비밀이다.

현실을 이렇게 진단하면 공약들이 많이 달라진다. 예컨대 글로벌 시장의 충격을 줄이고, 구조조정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고용보험 확대 강화를 중시한다. 사회보험료 일부(3%)의 조세 전환과 두터운(월 30만~40만원) 기초노령연금을 전제로 국민연금은 소득 재분배 기능을 없앤 소득비례형으로 바꾼다. 공공부문 확대, 청년고용할당제 같은 얘기는 안 한다. 공공부문, 금융부문, 비교우위산업 등은 임금 감하를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격차를 줄이고 고용의 양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내가 제시한 개념과 정책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어도, 후보들은 공약의 개념을 얘기해야 하고, 물질적 재생산 구조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개념이 부실한 공약은 대참사를 초래한 삼풍백화점이라는 것도!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한겨레, 201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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