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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남남 신뢰 프로세스부터 구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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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27 15:34 조회20,1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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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가 개막했다. 첫 여성 대통령의 등장이란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5년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벌써부터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취임식 직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선거 당시 득표율을 훨씬 밑도는 44%까지 떨어졌다. 각료와 비서진 인선 및 정부조직법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경륜의 부족과 불통에 더해 핵심 공약의 파기로 신뢰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마저 흔들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이러다간 취임 후 1년도 안 돼 위기상태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실패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의 처지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경제 상황은 위중하고,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사회적 갈등은 위험수준에 이르렀다. 북한은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안보지형을 흔들고, 이웃 중국과 일본은 영토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잠시라도 삐끗했다간 대한민국호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취임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를 바로잡고 한시바삐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대오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것이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핵위기의 해결이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 강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같은 이는 예방적 선제공격 방안까지 거론한다.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핵무기를 포기할 정부가 한반도를 통일하게 해야 한다며 사실상 북한 정권 제거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국내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론에서부터 자체 핵개발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실효적 방안이 되기 어렵다. 북한은 극심한 제재 속에서도 핵개발을 멈추긴커녕 핵기술을 고도화해왔다. 제재는 애꿎은 북한 인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켰지 핵개발을 막진 못했다. 예방적 선제공격은 우리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전면전으로 비화할 위험은 물론이고, 그 공격으로 북한의 핵무기가 폭발할 경우 우리가 입게 될 피해는 이루 형언할 수 없다. 폭발에 의한 직간접 피해는 물론이고, 방사능에 의한 오염으로 한반도는 후쿠시마 지역보다 더한 불모지가 될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을 제거하고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방안은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중국의 동의도 동의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혼란과 위험도 결코 간과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개발은 한반도 비핵화란 목표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동북아 지역의 군비확장 경쟁을 가속화해 이 지역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다.


사실 지난 20년간 증폭 일로를 걸어온 북한 핵위기는 체제유지를 위한 억지력을 확보하려는 북한의 집요한 노력과 이에 대응한 남한과 미국 등 우방국들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의 해법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주변국이 북한에 정권 전복을 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한 핵위기의 평화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불신을 걷어내고 신뢰를 양성하는 게 말처럼 쉬울 순 없다. 외부 여건이 어떻게 변화하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독일이 분단 40여년 만에 통일이란 위업을 달성한 것은 보수적인 기민련 출신이었던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가 사민당 출신인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일관되게 추진해온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서독 사회 내부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그 갈등의 고리를 끊고, 적어도 대북정책에서만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남북 신뢰 프로세스에 앞서 대북 정책의 장단기 목표와 그 단계적 방법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남남 신뢰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을 놓는 길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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