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독도 사태, 낡은 진영논리를 벗는 계기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31 14:13 조회33,070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양국에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양쪽 정치인들, 그중에서도 일본 정치인들이 국내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갈수록 상황을 고조시키고 있는 탓이다. 그들은 국제사법재판소 회부에서부터 통화스와프 연장 거부 등 온갖 대응수단을 들먹이더니 급기야 군대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의 뜻을 담았던 고노 담화마저 번복할 태세다. 우익 포퓰리스트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이 우리 쪽에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를 대라고 종주먹을 들이대자 집권 민주당의 마쓰바라 진 공안위원장이 이에 질세라 동조하고 나섰고,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자민당이 재집권하게 되면, 일제 지배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모든 담화를 재검토하겠다고까지 했다. 각 당이 곧 치러질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경쟁적으로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소비세 문제 등으로 바닥을 헤매고 있던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사정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계속 강경론으로 도와주는(?) 덕에 친인척 비리 등으로 추락 일변도에 있던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조금은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 지도자가 한-일 관계를 희생시키며 서로 살길을 찾아준 꼴이 됐다.
하지만 이런 국내정치적 계산이나 민족주의적 감정을 떠나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의 성과를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군대위안부 문제를 염두에 둔 행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두 사안의 연결을 부인하면서도, 독도 방문 배경 설명에서 한-일 관계 발전의 걸림돌인 역사문제 해결의 시금석이 군대위안부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노다 총리의 태도에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사실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해결을 늦출 수 없는 긴급과제다. 1년 전 오늘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위안부의 대일 배상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일본과 제대로 된 교섭은 시작조차 못했다. 배상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에 그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과거를 묻지 않은 채 ‘미래로’를 외치며 일본과의 군사동맹까지 추구했던 이명박 정권의 책임도 크다. 이 대통령이 늦게라도 위안부 문제의 긴급성을 깨달았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 해결을 위해 독도 방문을 택한 것은 패착이었다. 반인도적 범죄 추궁에 고삐를 죄는 대신 영토 논란으로 이를 희석시킬 수 있는 기회만 일본에 제공한 셈이 됐다. 일본은 잽싸게 고노 담화조차 부인하는 등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겠다고 나섰다. 청와대 당국자는 일본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지만 바로 이게 일본의 본색이다.
일본의 이런 오만방자한 행태는 아무리 비판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사실 광복 후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과거사 문제를 해결 못 한 채 일본에 수모를 당하는 데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이승만 정권과, 배상문제 등을 명확히 매듭짓지 못한 채 한-일 협정을 체결한 박정희 정권 등 과거 정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또 남북이 둘로 나누어져 갈등하면서 남쪽은 미국과 일본에, 북쪽은 중국과 러시아에 매달린 탓도 크다.
이제 그만 이런 낡은 구조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이번 사태는 북한을 포위하는 한·미·일 공조라는 진영논리에만 기대서는 역사문제도 민족문제도 풀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번 사태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바탕의 소동도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동안의 북을 고립시키는 정책 대신 북과 협력해 한민족이 주변 강국들과 좀더 대등한 관계를 맺으며 한반도와 동아시아 새 질서를 만드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외세의 각축 속에 갈 바를 모른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나라를 잃었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국치일 102돌을 맞아 우리 모두 생각해 볼 대목이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8. 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