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국민통합을 향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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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05 13:55 조회27,9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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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이 국민통합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후보 캠프는 국민통합추진위원회를 조직했고,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주요 선거구호로 내세우고 역시 캠프 내에 국민대통합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특별한 기구를 만들지 않았지만 출마선언에서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강조한 바 있다.
지난 선거들에서 국민통합이라는 화두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후보들이 모두 국민통합에 이 정도의 가치를 부여한 적이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악화시키는 정쟁에 대한 염증으로 국민들이 기존 정당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고 안철수와 같은 무당파 후보가 과거보다 훨씬 큰 위력을 보여준 것이 정치권을 자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이유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불평등이 국민들을 사회·경제적으로 분열시키고 국민국가의 기초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대우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증오범죄’도 그 징후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정치적 분열 상태로는 심상치 않은 한반도 정세와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국민통합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후보들의 국민통합을 향한 행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다. 사실 국민통합이라는 구호는 대부분 안보위기 등을 과장해 정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고 아직 국민통합이라는 구호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가폭력의 희생자,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국민통합의 핵심 내용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흐름을 잘 이어가면 이번 대선은 과거 어느 선거보다 생산적인 선거가 될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있다.
이 점에서 보면 각 후보 진영이 갈 길은 아직 멀다. 국민통합을 추진하는 조직을 만들고 여기에 상징적인 인물을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후보에게 주어진 짐이 가장 크다. 이미 박 후보의 국민대통합행보가 소위 ‘과거사’ 관련 논란으로 꼬이고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 지금까지 국민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세력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동원해 다른 의견의 압살을 시도해왔던 수구적 정치행태에 있다. 이러한 역사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에 책임이 있는 수구세력과 단절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국민통합을 추진하더라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후보 본인의 인식도 문제이지만 박근혜가 변화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지지기반 내에서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과감한 결단 없이는 극복이 쉽지 않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청산해야 할 역사적 부채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박근혜의 경우처럼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자신의 국민통합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적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야권 내에서는 국민통합이나 중도는 그리 환영받는 노선이 아니었다. 이러한 구호는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만 증가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을 위한 국민통합인가를 더욱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남아 있는 후보단일화도 이와 관련한 비전을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선에서 어떤 방향으로 투표를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내린 듯하다. 앞으로 자신이 선택한 후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모처럼 좋은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는 이번 대선이 한국정치에서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감독하는 것도 유권자들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2.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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