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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동북아 지중해 네트워크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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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05 14:16 조회24,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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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세계는 국민국가를 단위로 만들어졌다.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데 뒤처진 한국은 망국과 식민과 분단의 고난을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오솔길을 헤쳐 왔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 각국의 국가 간 관계는 악화되고 있고 그간의 발전모델은 지속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동북아 각국 간 힘의 변동은 영토분쟁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한은 서해에 군사력을 강화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를 앞세운 자민당 강경 우파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도 얼마 전 국가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항공모함 랴오닝호의 취역식을 열어 주변국을 향한 무력시위를 벌였다. 당분간 동북아에서는 국가들 사이의 긴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가 차원에서 수출산업을 보호·지원했던 동아시아의 발전모델도 한계에 부딪혔다.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도 성장정책의 모델은 일본의 전후 고도성장을 모방했고 이는 이른바 ‘1940년 체제’를 모태로 했다. ‘1940년 체제’는 구소련을 모델로 삼은 괴뢰국가 만주국의 국가체제 실험이었다. 한국의 권위적 국가체제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재벌체제·수출산업·지역격차를 강화시켰다. 성장과 분배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고, 산업정책과 기업시스템의 효율성과 정당성이 약화되고 있다.


국가 간 갈등이 격화되는 조건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국가 간 네트워크 관계를 누적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북아의 국가들은 영토와 인구에 대한 통제에 관심이 많다. 남북한 간 갈등과 한·일, 중·일, 미·중 갈등도 영토주의적인 국가의 속성에 기인해 구조화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영토주의적 경향이 보다 약한 도시를 앞세워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즉 동북아의 바다를 연결하는 ‘동북아 지중해 경제’를 상상하고 추진해 보자는 것이다.


‘동북아 지중해 경제’는 다양한 층위의 도시 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의해 구성될 수 있다. 수도권 경인벨트는 개성·해주와 연결해 새로운 경쟁력을 지닌 신산업을 창출하도록 한다. 개성·해주는 농업·수산업 부문의 잠재력과 함께 다양한 역사적·문화적 자원을 보유한 곳으로, 1차·2차·3차 산업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글로벌 지역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 부산은 후쿠오카와의 물류라인을 강화하고 제주·광양과 연계해 물류·제조업 벨트, 관광·문화·스포츠산업 벨트로 발전하도록 한다. 서해안은 바다도시를 개발해 중국의 최대 경제중심지역인 장강 삼각주 지역과 열차페리로 연계해 새로운 글로벌 지역을 형성하도록 한다.


북한이 새로운 동북아 다국적 도시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게 되면 국가 간 관계의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북·중 경제협력의 핵심 프로젝트는 창지투(창춘·지린·투먼)-라선(라진·선봉) 연계 개발사업과 신의주 압록강변의 황금평 산업단지 개발사업이다. 여기에 한국·일본·미국·러시아가 함께 참여하게 된다면 각국의 영토주의 성향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된 다국적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조합에 의한 집권적 발전모델은 분권적 네트워크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선별·보호해 비교우위를 만들어내는 경제발전 모델을 형성한 바 있다. 그러나 글로벌화와 생산의 탈집중화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 포디즘 체제하에서는 중앙집권적 산업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수직적 통합 대신 생산조직의 분산화가 유리한 산업에서는 수평적 차원의 협력과 정보 공유를 가능케 하는 네트워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재벌체제와 경쟁할 수 있는 신생·중소·중견기업이 발전하려면 새로운 산업과 지역이라는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또 현재의 발전단계에서 새로운 기업·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유·창의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지방정부 간 네트워크를 통해 광역지역경제권을 형성하도록 하고 중앙은 지방정부와 관련된 권한을 위임하도록 해야 한다. 중앙정부·지방정부·기업·민간단체가 수평적으로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광역경제권 형성과 연결되는 산업정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농업·농촌 혁신은 광역경제권 산업클러스터를 통해 추진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현재 호남·대경·충청권 등이 그린에너지 분야를 선도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광역경제권 산업클러스터는 광역지역 대학 네트워크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 대학 네트워크는 지자체·대학·연구소·기업 간 네트워크의 활성화등 다양한 조직 형태의 실험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다. 신공항 문제도 광역지역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


세계체제와 동북아 질서는 일대 전환기에 들어서 있다. 이제 국가와 국가 간 체제만으로는 해결책을 구하기 어렵다. ‘동북아 지중해 네트워크 국가’라는 새로운 ‘지역’이 새로운 시대의 꿈을 만들 수 있다. 네트워크가 희망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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