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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혁] 계열분리명령제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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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26 12:12 조회21,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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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수단으로 계열분리명령제가 언급된 후 그 실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는 수단인지 밝히지 않은 채, 계열사를 떼내 기업집단을 분할하는 강력한 구조적 교정책을 거론하다보니 이른바 ‘재벌해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계열분리명령제를 주창하는 논리에 따르면, 그 목표로 경제력 집중 억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독과점 구조 해소 등이 제시된다. 그런데 경제력 집중 억제가 목표라면 제한된 자본으로 상당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계열사를 분리할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계열분리명령제를 활용해 경제력 집중 억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가 목표라면 계열분리명령제는 금융계열과 비금융계열을 분리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독과점 구조 해소가 목표라면 경쟁 저해 요인에 초점을 맞춰 계열분리명령제를 활용해야 한다. 이 중 국제적으로 선례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독과점 구조 해소 수단으로써 계열분리나 기업분할 명령을 활용하는 경우이다.

영국에서는 개별 사건이 제기되기 전이라도 경쟁저해 가능성이 우려되는 시장에 대해 선제적으로 조사하고, 사업자의 작위적인 위법 행위가 없어도 경쟁저해 요인이 있다면 이에 대한 포괄적인 교정책을 모색하는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즉, 위법행위를 처벌하는 차원을 넘어 경쟁저해 요인을 해소한다는 관점에서 시장구조 개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실제로 가격담합 등 위법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위법행위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시장구조 개선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

 


영국의 경쟁당국은 특정 시장의 어떤 특성이 경쟁을 방지, 왜곡한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시장조사를 실시한다. 법에 의해 경쟁저해 요인을 교정할 의무를 가지고 있고, 경쟁저해 요인을 해소하는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교정책에는 소비자와 생산자에 대한 정보 제공, 진입장벽 해소, 가격 규제, 자산매각·기업분할 명령 등이 있다. 경쟁당국은 이와 같은 교정책을 검토함에 있어 비례성(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즉, 교정책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고, 목표에 비해 과중한 부담을 부과하지 않으며, 대안을 선택하고, 목표에 비례해 과다한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한다.


교정책 중 자산매각·기업분할 명령은 강력하면서도 신중하게 적용되는 시장구조 개선 수단으로, 경쟁당국은 소비자 후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업자는 자산매각·기업분할 명령이 자신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소비자 후생을 고려할 때 독과점을 해체하는 것이 경쟁저해 요인을 해소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면 이를 교정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소유주의 동의가 없어도 정당한 보상이 제공된다면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유재산 수용권이 자산매각·기업분할 명령의 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산매각·기업분할이 실제 이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미국의 경우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분할 명령은 과거 인수와 합병을 통해 탄생한 거대기업을 분할한 사례이고, AT&T는 기술진보로 경쟁 도입이 용이하게 됨에 따라 장거리 전화와 지역 전화망의 수직분리를 명령한 사례이다. 영국의 경우 기업분할이 실제 이행된 것은 영국공항공단(BAA) 1건뿐이다. BAA가 런던과 스코틀랜드의 주요 공항들을 인수한 후 탑승객의 수속절차상 편의나 안전보다는 면세점 등 입주 상점 확장에 치중해 비판의 대상이 되자, 경쟁당국이 BAA로 하여금 런던과 스코틀랜드의 주요 공항 2개와 1개를 각각 매각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실제 자산매각·기업분할로 이행된 사례가 많지 않더라도 구조적 교정책이 채택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잠재적 규율효과를 갖는다. 계열분리명령제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그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
(경향신문, 201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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