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연] 노벨 문학상, 동아시아 문학,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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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31 12:28 조회21,5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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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동아시아 문학,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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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올해 노벨 문학상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동아시아인들의 관심 거리였다. 모옌과 무라카미 하루끼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서 끝까지 경합을 벌였고, 고은 역시 올해도 거의 단골손님처럼 유력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인들의 관심을 한껏 받은 이번 노벨 문학상은 동아시아 문학이 어떻게 세계문학과 만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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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
모옌의 수상에 대한 동아시아 3국의 반응도 흥미롭다. 중국은 중국 국력과 중국 문화의 승리라고 뿌듯해하고, 한국에서는 모옌 보다 나은 한국 작가도 많은데 동아시아에서 유독 한국만 노벨 문학상을 배출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하루끼가 모옌에게 밀렸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그런데 노벨 문학상이라는 것이 각국 국가 대표로 나선 작가들이 금메달을 두고 벌이는 경쟁도 아니고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보면, 모옌의 수상을 두고 중국에서 국력과 중국문화의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민족주의적 발상이고, 한국과 일본에서 마치 축구 게임에서 중국에게 진 것처럼 못 마땅해 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것 역시도 다른 버전의 민족주의 발상이다.
우리 문학 차원에서도 그렇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보더라도, 노벨 문학상에 관련한 논의가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언제 우리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노벨 콤플렉스’ 차원에서 벗어나서 지구화 시대 바람직한 세계문학은 어떠한 것이고, 이를 위해 동아시아 문학은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모옌과 하루끼의 문학이 이러한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옌의 수상을 두고 모옌이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관방작가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노벨상을 수상한 그의 문학이 중국에게 갖는 의미만이 아니라 세계문학에 갖는 의미를 따져 묻는 일인 것이다. 세계문학을 규정할 때, 노벨 문학상 수상 여부나 세계 시장에서 어느 작품과 어느 작가가 가장 환영받고 가장 많은 세계 독자를 확보하느냐는 시장 중심 차원이 아니라, 근대 세계에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적 노력, 근대 세계를 넘어서려는 일종의 이념이나 기획,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세계문학을 규정한다면, 모옌은 물론이고 하루키의 문학까지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모옌의 문학을 비교해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세계 시장에서 독자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는 기준으로 본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연 앞선다. 그는 문학성과 시장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고, 그의 문학이 국경을 넘어 읽힐 수 있는 내용과 감각을 지닌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문학을 근대세계와 치열하게 대응하면서 세계문학 지형도를 새로운 구축할 수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지를 두고서는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일본 현실을 다루되 서구인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문체나 작품 세계 차원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이도록 보편적으로 승화시키는 하루키의 탁월한 장점과 더불어, 역사의 기억을 소거시키면서 포스트 모던한 세계를 탈역사적으로 신비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다시 평가하는 일이, 이번 노벨상 후보를 계기를 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모옌 문학의 경우, 제국과 식민의 역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중국이 체험한 극단의 역사에 천착하면서, 그러한 민족의 국지적 역사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재생하면서 그것을 20세기 인류의 삶과 인생의 문제로 확대시킨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강점이 있다. 특히 그의 소설에서 추구하는 새로운 서사 실험은 서구 근대의 지배적인 양식을 해체하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중국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전통적 서사의 발굴과 재해석을 통해 서구 서사 전통을 균열내면서 세계문학의 새로운 서사 영역을 개척하고 기존 소설 서사를 혁신하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그것을 남미문학에서 흔히 발견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편의적으로 호명하지만, 모옌 문학에 나오는 여러 서사 실험 대부분은 기실 중국 전통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서사 실험이 꼭 성공한 것만 아니어서 중국 역사와 현실에 끈질기게 천착하면서 정면으로 대결하는 리얼리즘 정신의 결핍과 자연주의적 경향, 그리고 세태소설 식의 우회와 회피라는 혐의를 동반한다. 온갖 기이하고 엽기적이고 황당한 이야기의 현란함에 가려 현실 모순의 총체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인생은 고달파는 그러한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경우라 할 것이다.
당연히, 노벨 문학상이라는 것이 세계문학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노벨 문학상이란 기본적으로 서구문학을 ‘그리니치 표준시’로 상정하는 서구중중심주의 산물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세계 문학 시장에 얼마나 많이 유통되는지를 문학 세계화의 기준으로 삼는 소비와 시장 중심의 세계문학 논의가 창궐하는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노벨 문학상은 시장을 매개로 개별 국민국학이 세계문학과 만나는 것과 다르게, 문학 자체의 맥락을 지닌 채 개별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문학과 만나는 유효한 길 중의 하나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노벨 문학상이 세계문학의 지형도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일정한 역할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학계가 노벨상을 단순히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굴복이라는 차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좀더 열린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모옌과 하루끼의 문학을 노벨 문학상의 기준만이 아니라 세계문학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재평가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 3국의 문학을 보면, 일본이 포스트 모던한 세계와 씨름한다면, 중국은 여전히 근대와 격전을 치르는 형국이고, 한국은 디 둘 사이에 있거나 둘 다에 걸쳐 있다. 한국 문학은 어찌 보면 모옌과 하루키의 사이이거나 혹은 둘 다이다. 이는 한국 문학의 가능성이기도 하고 한국 문학의 개성과 존재 의미 차원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번 노벨상에서 하루키와 모옌이 경합한 상황은 한국 문학에 하나의 도전이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작가들이 유례없이 주목을 받은 올해 노벨 문학상의 결과가 우리 문학이, 노벨상도 노벨상이려니와 진정한 세계문학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작품 세계와 서사 면에서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서남포럼, 201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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