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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한전 독점 깨기와 전기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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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1-23 14:22 조회21,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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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독일에서는 원전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도 이 운동에 꽤 많이 참여했다. 그들 중에는 하노버에서 대학을 다니던 학생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반대시위에 적극 가담하면서 동시에 원전의 위험을 알리는 시민계몽 운동을 벌였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대항 운동으로 태양열 온수장치를 만들어 설치하는 일을 시작했다. 첫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에 고무되어 1979년에 아예 원자력을 몰아내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은 태양에너지 기업을 설립했다. 여덟 명의 친구들이 설립자이자 직원이 되어 출발한 이 기업에서는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공동소유, 공동운영, 공동 수익분배가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았고, 수익이 조금 나더라도 재투자를 했다.

이 회사가 설립된 지 33년이 되었다. 규모는 커졌지만 원자력을 몰아내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건설에 기여한다는 설립 초기의 정신과 운영 원칙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설립자 여덟 명도 한 명만 빼고 모두 남았다. 직원은 350명, 매출액은 3600억원으로 늘어났고 유럽 전역, 북미, 북아프리카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여전히 회사는 100% 직원 소유이고 공동운영 원칙을 지키고 있다. 신입직원은 일한 지 2년이 되면 회사의 지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경영진은 2년마다 전 직원이 선출한다. 경영자로 선출되었다가 2년 후에 선거에서 지면 다시 평직원으로 돌아간다. 평등한 수익분배의 원칙은 조금 바뀌었다. 얼마 전부터 급여에 약간의 차등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태양에너지 제품 생산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도 원자력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무실과 공장 건물에서는 난방에너지를 보통 건물의 10%도 안 쓰고, 이것조차도 재생가능 에너지를 쓴다. 1998년에는 독일 최초의 파시브하우스 에너지 자급 사무실 건물을 완공했고, 그후 에너지 100% 자급 공장도 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 반대 정서가 꽤 퍼져 있다. 그러나 아직은 주로 반대의견의 표출에 머물러 있고 정부와 정치인에게 원전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간간이 일어나는 시민참여 태양광발전소 건설 운동이 참신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생산한 전기를 원전 위주 독점기업인 한국전력에 판매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신선하지는 않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나기 전 일본에서 재생가능 전기 보급에 열심이던 어느 시민단체에서는 10년쯤 전 그 전기를 도쿄전력에 판매하는 게 가능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에 대해 약간의 비판과 논쟁이 있었는데, 이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판단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내려주었다. 원자력을 모시는 도쿄전력을 인정하면서 원자력을 몰아내겠다는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비판 측에서 내놓은 대안은 도쿄전력에서 받는 전기를 끊고 전기 자급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느리고 아주 어렵지만 시민단체에서 이 길을 선택했다면, 전기 독립 주택이 많이 생겨났을 것이고,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제한송전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의 생산과 공급을 한전과 그 자회사가 거의 독점한다. 이들이 공급하는 전기의 40%는 원자력에서 나온다. 원전 1기를 줄이기 위해 재생가능 전기를 생산하고 에너지 절약을 열심히 하더라도, 이 독점을 깨지 않으면 원자력을 몰아낼 수 없다. 지금의 정치·경제 상황에서 한전의 독점을 깨기 위한 첫걸음은 전기 독립이다. 한전에의 종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1979년에 설립된 독일의 에너지 독립 기업은 지금도 묵묵히 원자력 없는 지속가능 사회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설립자들은 젊은 시절의 꿈과 비전이 실현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젊은이와 기업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 수십년 후에도 꾸준히 자기 길을 가고 있어야만 원자력이 사라질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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