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이제 녹색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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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20 16:17 조회24,5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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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녹색당이다
수구적 진보’ 정치인들의 추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대중은 이들을 정파나 계파를 만들어 담합하고 자리를 나눠먹는 세력으로 확연히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통합진보당의 경우 민심과 상식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이들이 확고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중정치 기반은 이미 사실상 붕괴되었다. 고립을 자초한 이들의 정치적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수구적 진보 정치인들의 실언은 낡은 이념과 가치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간 한국의 진보 이념은 시장원리보다는 국가 개입을 선호하고 반미(反美)와 남북 통합을 중시하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해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 약화와 중국의 대국주의 확장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의 직접 개입으로 경제구조를 바꾸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에서 복잡성과 카오스의 정도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완고하게 국가주의와 반미 민족주의만을 외친다면, 대중은 이를 수구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4·11 총선에서 확보한 통합진보당의 득표율은 그들의 조직적·정책적 위기 때문에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은 대통령제·소선거구제와 제도적 보완성을 지닌 양당정치 구조로 흡수될 것이다.
또한 상당 부분은 ‘녹색’ 정치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출범에 박차를 가한 녹색당은 4·11 총선에서 득표율이 0.5%에 불과했다. 그러나 녹색당은 다시 결정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서독 녹색당의 경우 1980년 1월 결성되어 그해 10월 연방총선에서 1.5%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러나 83년 총선에서 5.6%, 87년 총선에서 8.3%의 정당 지지율을 확보했다. 서독 녹색당의 결집에는 70년대 후반 사민당 정부에 대한 실망이 크게 작용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무장과 군비증강, 개발주의적 성장모델을 추진하던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노선이 진보적 지향을 지닌 이들로 하여금 사민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녹색당을 키우게 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의 조건으로만 보면 2016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5% 이상의 정당 지지율을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장의 지역정치 활동가들을 공황상태에 빠트린 수구적 진보 정치인들이 ‘사실상의 녹색당 창립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녹색당이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조직·정책 측면에서 ‘새로운 진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간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진성당원 정당 모델을 답습해왔다. 그러나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모델로는 복잡화하는 외부 시스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는 ‘시민개입주의’라는 새로운 현상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민이 단순히 선거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슈와 선호를 표현하고, 정치를 직접 구성해 나가는 흐름이다. 네트워크 정당의 모델은 2000년대 들어 미국 민주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해적당 등에서 실험되고 있다.
녹색당은 자신의 가치를 분명히 지켜야 하지만, 시민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실현가능한 정책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에너지 전환과 농업·농촌 발전은 녹색당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이를 통해 국내적 혁신과 지속가능 발전을 추구하고 세계체제·분단체제를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간의 녹색진영에서 강조해온 지역 단위의 에너지 자립체제의 실험, 자원순환형 농업 시스템의 건설은 계속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혁신과 성장을 동시에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이미 호남권, 대경권, 충청권 등 3개 광역경제권은 재생에너지 및 그린에너지 산업 분야를 선도사업으로 선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광역경제권 간의 중복투자를 피하고, 지방분권과 민간 주도 방식의 사업추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과 협동조합이 연계해 새로운 농공상 융복합 산업과 도농복합지역을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로컬푸드시스템을 구축하되 소규모 지역 내의 자급이라는 협소한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는 좀 더 광역적인 체계를 구축해야 지속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전환과 농업·농촌 발전은 일국 차원에서 이룩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한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에너지 전환과 식량·식품 안전을 위한 국제·지역 협력의 촉진자 역할을 할 잠재력이 있다. 재생에너지 개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원자력 안전의 공동감시체계 구축, 식량·농업 개발, 질병공동관리체계 구축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이제 국가사회주의, 위계적 발전국가, 그리고 그에 기반한 남북 통합 모델은 낡은 모델이 되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수구적 진보 정치의 역사적 사명도 끝나가고 있다. 녹색당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제학
(경향신문 201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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