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 ‘스펙’, ‘힐링’에 빠진 한국사회의 일상을 성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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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9-17 12:52 조회22,8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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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과 힐링. 현재 한국사회에 떠도는 가장 뜨거운 영어 단어 두 가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까지도 스펙 관리에 몰두하는 한편,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힐링을 희구한다. 스펙이 기계의 사양이나 제품 명세표를 뜻하는‘specification’의 줄임말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인간을 기능이나 사양별로 평면화해 철저하게 도구로 파악하는 관점을 나타낸다.
이렇게 스스로를 도구화시키는 한 편에서 많은 이들이 힐링을 원한다. 화학적인 치유와 달리 자연적인 치유를 함의하는 힐링은 스펙 쌓기에 지친 이들을 보듬어 안아준다. 휴양림에서 서점까지, 명사 강연에서 TV 토크쇼까지 힐링은 가히 산업이라 불릴 만큼 일상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됐다.
사회인문학은 이 웃지 못할 현대 한국사회의 현장과 일상을 성찰하는 새로운 인문학 실험이다. 속담에‘병주고 약준다’는 말이 있듯이,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불안정한 경쟁 속에 몰아넣어 도구화해야 하는 파괴적 상황이 펼쳐지는 한편, 그 파괴적 상황 자체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바꾸는 대신 그저 조각난 휴식과 일시적 치유에 매달리는 현재의 생활환경을 이중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이 실험의 목적이다.
사회인문학 총서 시리즈 이를 위해 사회인문학은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돼 가는 인문학의 사회성을 복원해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삶의 현장을 비판하고 성찰함과 동시에, 경쟁과 도구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는 힐링이 아니라 인문학적 근본 물음으로 사회생태계의 공생 조건을 복구시키기 위한 탐색을 거듭하고자 한다. 그래서 사회인문학은 하나의 분과학문이나 그저 다양한 분야가 공존하는 학제적 연구 어젠다가 아니다. 사회인문학은 현장과 일상에서 출발해 사회생태계의 공생 조건을 모색하는 절박하고도 실천적인 앎을 지향한다. 그래서 사회인문학은 정태적인 인식론이 아니라 역동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제 5년차를 맞이하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인문한국 사업단은 이런 기본적인 관점하에서 사회인문학이라는 어젠다를 다각도에서 구체화하고 예각화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명칭부터가 새롭고 낯선 것이라 적극적으로 그 취지를 알리고 관점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거듭된 학술행사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인문학의 기본 뼈대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사회인문학 총서다. 사회인문학 총서(한길사 간행)는 지금까지 세 권이 출간됐다. 2008년도에 인문한국 사업에 선정된 이후 1단계 3년 동안의 연구활동 성과를 총망라 했다. 물론 이 책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노력들이 1단계 3년 및 2단계 1년 동안 이뤄졌지만, 사업단이 제시하고자 하는 사회인문학의 기본인식 태도 및 실천 지향은 이 총서에 어느 정도 집대성돼 있다.
제1권『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사회인문학의 정의 및 학적 지향을 담아냈고, 제2권『한국인문학의 형성』에서는 한국인문학의 제도 및 담론의 형성사를 분석해 인문학의 사회적 구성양상을 추적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제3권『지식의 현장, 담론의 풍경』에서는 현대 한국의 인문잡지를 대상으로 삼아 인문적 앎의 현장성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했다.
이와 더불어 성미산 마을공동체와 연대해‘마을 인문학’이라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사회인문학이 현장과 일상에서 출발한다고 할 때, ‘마을’이라는 현장에서 어떻게 인문학의 실천성이 회복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이는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삶의 인문화와 인문학의 현장화 가능성을 가늠하는 소중한 실험의 장이다. 이러한 사회인문학 실험은 대학의 울타리를 허물어 사회의 다양한 현장과 함께하는 인문학의 연구-실천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실험을 국제적인 차원으로 확대해 내년 6월에는 일본 도쿄대와 공동으로 양국의 학생, 연구자, 관료, 기업인, 사회운동가들이 참여해 동아시아 및 글로벌 차원의 공공성과 공생을 모색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회인문학은 이러한 벽 허물기를 통해 인문학의 사회성, 사회의 인문성을 복원하는 길을 변함없이 추구해나갈 예정이다.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사회학
(교수신문, 201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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