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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여성, 공공의료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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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05 14:29 조회23,8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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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군대 가는 ‘오빠’들이 지켜주고 있었던 게 전방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군복무를 대신하여 지역의 보건소와 보건지소, 국공립 병원, 응급의료나 복지시설 등에 파견되어 오던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그나마 어렵게 지탱되던 의료 취약지나 농어촌 마을의 공공의료도, 공공의료기관의 진료도 모두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공보의는 왜 부족하게 되었는가. 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으로 군복무를 이미 마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아져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사 가운데 여성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여성의 증가가 문제라는 시각은 공공의료의 붕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뿐만 아니라 의료계 자체의 문제진단 속에도 만연해 있다. 최근 10년 사이 의료기관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산부인과에서 여성 의사의 증가는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로 비친다. 출산율 저하도 큰 원인이지만 야간근무와 위험이 큰 분만을 기피하는 여성 의사들이 증가하면서 산부인과는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산부인과가 기피 대상이 되면서 남성 의사의 지원이 더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넘쳐난다. 동시에 성적 좋은 여학생들이 어렵고 힘든 필수의료의 영역이나 지역 의료기관 취업을 외면하고 대도시에서 힘 안 들이고 돈 벌 수 있는 분야를 선호하면서 의료의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모든 문제를 여성 비율의 증가 탓으로 돌리면서 실종되는 것은 한국 의료 문제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며, 동시에 새로운 앞날을 그릴 수 있는 전망이다. 여성이 문제라고 보니 결국 여성 의사들을 공보의로 활용하자는 대안을 내놓거나 장학의사 제도를 마련하여 국가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대신 졸업 후 5년간 의료취약지구에서 근무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다. 여성 공보의는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상태이고, 장학의사 제도는 그 취지상 주로 남성들을 선발하게 될 터이니, 공공의료의 대척점에 선 여성 의사의 이미지는 아마도 더 굳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를 군복무를 대신하여 근무하는 공보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국가적인 투자 없이 군복무 대체 공보의에게 전담시켜 싼값에 해결하고자 하는 한 아무리 의대 증원을 확대하고 장학의사를 배출해도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지역 의료와 공공의료를 임시인력에게 맡기는 태도는 환자들로 하여금 대도시 큰 병원이 좋은 병원이고 기회만 있다면 큰 병원으로 가겠다는 욕망을 부추긴다. 그러다 보면 지역 의료기관의 여건은 악화될 수밖에 없고 인력난도 가중될 따름이다.

공공의료는 물론 이윤이 되지 않는 부분도 담당해야 하지만, 의료 전체가 이윤을 추구하도록 그대로 둔 채 ‘나머지’를 처리하는 개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서울 지역부터 보건소를 확대해야 하고 공공병원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또한 현재 의료계의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덧붙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의료계 전체가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잔여’나 ‘추가’가 아니라 상당한 부분이 공공성의 원리를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은 애초부터 공공부문을 기피하는가? 그렇게 볼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공공성을 정의하는 방식에 있다. 의료인은 군대처럼 피할 수 없어서 몸담게 되고, 환자는 할 수 없이 찾는 것이 공공의료여서야 되겠는가.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다시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여성의 증가로 인한 공보의의 감소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한겨레, 201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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