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대선과 한반도 혁신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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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11 14:17 조회22,5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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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5년 만에 치르는 대통령 선거의 의미는 여전히 크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대토론을 벌일 기회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안철수 후보의 등장 덕분인지 과거 선거에 무관심했던 이들조차 토론에 동참할 태세다. 삼삼오오 모이는 곳이면 대선이 화제에서 빠지지 않는다. 아직은 인물 품평이 논의의 주를 이루지만 각 후보 진영이 국가경영 비전을 내놓기 시작하면 그것이 핵심 토론주제가 돼야 할 터다.
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나 시민사회에서 이번 대선을 겨냥해 내놓은 의견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원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찍부터 이번 대선이 87년 체제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평화·복지·정의·연대의 2013년 체제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권력관계의 도착을 바로잡는 ‘생명의 정치’란 화두를 제시했다. 우리 사회의 장기적 전망과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이다.
이와 더불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게 김석철 교수의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이다. 10일 세교포럼 토론을 앞두고 살펴본 그의 그랜드 디자인은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공간 개편 구상을 담고 있다. 김 교수 자신이 통일을 염두에 두고 지난 40년간 가다듬어온 구상을 이 시점에 밝히는 이유를 2013년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분단국가란 불완전한 상황을 떨치고 일어설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과 북 모두 심각한 경제상황 등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런 위기를 적절한 국가 인프라 사업과 남북 공동사업을 통해 극복한다면 크게 도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제언은 얼핏 보면 대선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대규모 국책·개발사업 제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처럼 여기저기 파헤쳐 국토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과 수도권과 지방의 심각한 격차로 인한 사회의 양극화, 극심한 경제난과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북한, 남북 사이에 되풀이되는 충돌과 갈등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생각하며 그의 제언을 다시 살펴보면 의미 있는 내용이 적지 않다.
그는 한반도를 각각 2500여만명의 인구를 거느린 수도권과 지방권, 그리고 북한으로 3분해 각 부분에 걸맞은 방식으로 공간 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에 대해서는 투자가 아니라 파괴를 수반한 창조적 개혁을 요구하고, 지방권의 경우엔 통합 공항 등 수도권에 버금가는 국토 인프라를 건설하고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지방분권 정부의 수도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지금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뉴타운을 산업과 주거가 결합된 도시공동체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뉴타운에 숙박업 기능을 부과해 베네치아의 캄포처럼 공방과 호텔과 상점이 어우러지게 하면 갈수록 늘어나는 관광객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주장은 북한·러시아·중국의 접경지인 두만강 하구에 다국적 도시를 만들고, 비무장지대 인근 추가령 구조곡을 활용해 동서횡단 운하를 만들어 백두대간의 물과 시베리아의 에너지를 남북 전역에 공급하자는 의견이다. 운하를 따라 금강산과 명사십리에는 도농복합 중간도시를, 철원고원에는 에너지타운을, 그리고 한강 하구에 디자인시티를 세워 수변도시로 연결하면 아름다운 도시 회랑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그의 구상에 대해 이미 있는 지방공항도 기능하지 않는데 통합 공항을 만드는 것은 과잉투자라는 지적도 나오지 싶다. 또 북·중·러 국경지역의 다국적 도시는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동서횡단 운하 역시 북한의 뜻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당장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각종 이해대립과 지정학적 현실주의를 넘는 이런 상상력이야말로 지역·남북·국제관계에서의 갈등을 풀고, 상생과 평화의 길로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구상이 이번 대선 과정의 토론을 좀더 풍성하게 만들기를 기대한다.
권태선 / 한겨레 편집인
(한겨레 201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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