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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안철수, ‘정치 야만족’인가? ‘정치 혁명군’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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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12 12:36 조회22,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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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정치 야만족’인가? ‘정치 혁명군’인가?(1)
위대한 생각과 참신한 방법은 어디에 있나?


1. 지난 10월 7일 안철수가 발표한 정책비전선언문은 그의 시대 인식과 핵심 가치, 정치 철학 등이 집약된 강령적 선언이다. 향후 세부 정책들의 기조와 정치적 행보의 방향 등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플랫폼이나 골조라고 할 수 있다.
 
‘정책비전선언문’이라는 명칭은 역대 대통령 후보 중에 처음이지 않을까 한다. 대개의 후보들은 출마선언문이 이런 성격을 띤다. 어쨌든 이 글은 자동차로 치면 경차인지, 스포츠카인지, 오프로드용 4륜 구동차인지, 트랙터인지, 덤프 트럭인지를 결정짓는 차대(플랫폼)에 해당한다. 집으로 치면 초가삼간인지, 60평 아파트인지, 궁궐인지를 결정짓는 골조(초석, 기둥, 대들보 등)에 해당한다. 이 글은 결코 좋은 말의 성찬이 아니다. 너무 짧아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미처 담지 못한 글도 아니다. 차축 간의 거리와 엔진 등을 보면, 시트, 바퀴, 덮개 등을 다 붙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차인지 알 수 있고, 집의 기초와 기둥과 대들보 등을 보면 집의 규모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글은 안철수의 철학, 안목, 구상, 편향 등을 상당히 선명하게 알려준다.
 
2. 강령적 선언이나 (비전, 정책이 집약된) 출마선언문은 선진국 정당·후보들의 그것과 비교를 하거나, 한국의 역대 대통령 후보--특히 박찬종, 정주영, 문국현, 권영길 등 제3 후보--들의 출마선언문과 비교하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학력고사 시절 국어 시험공부 하듯이 글의 요지와 문단 구조 등을 찬찬히 분석하고, “낡은 체제, 기득권, 특권, 반칙, 독점, 국회(동의)” 등 핵심 단어들의 사용 빈도와 용법을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책 기조조차도 얘기 안한 부문, 정책 기조 정도는 얘기한 부문, 아주 작은 구체적 아이디어까지 얘기한 부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정책적 가중치와 준비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강령적 선언에서 가장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정책 기조나 공약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진단 내지 정의이다. 즉 정치(대통령, 국회, 정당 등), 경제, 교육, 복지, 남북관계 등 주요 부문에서 무엇을 진짜 중요한 문제로 보는지? 주된 대립물(질곡)을 무엇으로 규정하는 지다. 정책 기조는 이 파생물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의외로 연구, 고민하지 않는다. 결론 먼저 얘기하면, 7월에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과  10.7 선언문의 치명적인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그토록 중시하는 정치 혁신 관련 생각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교육 관련 생각은 거의 없다시피 한 이유다.  
 
아무튼 제로베이스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정의하는 것은 자동차를 설계할 때, 소비자의 요구(차량의 용도)와 도로 환경 등을 묻고 정의하는 것과 같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비포장 산길을 다닐 사람에게 지면에 딱 붙어 달리는 멋진 스포츠카를 만들어 주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바퀴와 엔진이 달렸다고 해서 다 쓸 만한 자동차가 되는 것은 아니다. 
 
4. 강령적 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총론적 문제 정의 내지 핵심적인 질곡(모순부조리)에 대한 정의이다. 10.7 선언문을 살펴보면, 그 동안 진보(좌파)의 부동의 주된 대립물이었던 신자유주의와 그 변주곡들인 경쟁/성장/개방 만능주의, 근본주의, 지상주의라는 표현이 없다. 표현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핵심 질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것을 이념정책적 진일보라고 평가한다. 한국 사회는 시장에 너무 많은 것을 맡겨서 문제라기보다는 국가도, 시장도, 사회(공동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즉 기득권자 편향이라서 문제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자의 약탈 수단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강령은 신자유주의와 취약한 (선별적) 복지를 주된 대립물과 핵심 처방으로 삼는다. ‘북유럽’ 운운하는 문재인, 이정우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주류는 여기에다가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를 추가하였다.
 
5. 10.7 선언문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옥죄는 핵심 질곡(주된 대립물)을  신자유주의 대신에 “낡은 체제, 기득권, 특권, 반칙, 독점”으로 정의 하였다. 선언문의 표현은 이렇다.
 
“수십 년 동안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소수 기득권의 편만 들던 낡은 체제”, “부정과 불의, 부패한 낡은 체제”, “특권과 반칙으로 부가 집중되고, 기회가 박탈되는 낡은 경제”, “특권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불공정한 기득권구조”,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특권과 독점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정책”
 
이런 프레임(특권과두체제 등)으로 문제를 진단하는 논객들이 몇 명 있는데 이들의 롤 모델은 미국 역사에서 진보의 시대를 연 두 대통령―공화당의 시오도어 루스벨트(1901~1909)와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1932~1945)―이다. 시대 인식도, 주된 대립물 인식이 미국 루스벨트 시대와 유사하다는 얘기다. 이 두 대통령은 독점기업을 규제하고, 소득세를 도입했고, 소득세 누진율을 높였고, 친노조적이었고,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빼놓으면 정치정책적 주장 하나 못하는 부류보다는 좀 낫지만, 한국 사회의 특이성, 양면성, 속살을 천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10.7 선언문은 루스벨트 정책을 역할 모델로 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조차 제대로 체화하지 못하였다.  
 
6. 원래 정치 입문 세력들은 예외 없이 기존 정치 세력이나 체제를 낡았다, 불의하다고 하기 마련이다. 불공정한 기득권 구조는 낡은 체제의 동의어고, 반칙, 특권, 독점을 묵인, 방조하는 제도, 관행일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특권, 반칙, 독점”, “소수 기득권 및 과보호구조”의 구체적인 내용일 것이다. 도대체 정치인 안철수의 주된 대립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의 실제 내용은 무엇일까?
 
독점은 법령과 경제학 이론으로 그 의미와 패악을 정확히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거의 모든 정치세력의 공적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프레임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기에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늦게, 최근에야 부각되었다. 한편 반칙은 대체로 범법이고, 특권은 법 앞의 평등 위배다. 대표적인 현상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물론 이 역시 공공의 적인데, 이 역시 신자유주의 프레임으로 인해 늦게 부각되었다. 이념정책의 식민성(강단 중심의 오퍼상의 영향력)을 탈피하지 못한 한국 진보(좌파)의 큰 실책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선언문에서 특권과 독점은 ‘우리 법 곳곳에 숨어 있으며’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정책’과 ‘반칙이 통하는, 몰상식적인 사법체계’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보는 것으로 보아 합법적, 제도적인 것도 주요하게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체적인 예로 든 것은 국회(의원) 특권, 전관예우, 낙하산 인사(공기업 감사 자리 논공행상) 등이다.
 
그런데 특권은 원래 “생산한 가치(기여), 부담, 의무”에 비해 과도한 “권리, 이익, 혜택”을 누리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정의・공평(기여, 부담과 권리, 이익의 균형) 프레임 혹은 “경제적 지대(rent)" 프레임으로 보면 한국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특권을 포착할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혹은 GDP라는 잣대로 동일 직능, 직업의 평균적 처우 수준을 OECD 주요국과 비교해 보는 간편한 방법도 있다.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중소기업 근로자(성 밖 사람)와 대・공기업 노조원, 금융회사 임직원, 공무원, 교수, 변호사 등 ‘성 안 사람’의 고용임금 수준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국세청 과세 자료를 가지고 국제 비교를 해 보는 방법도 있다.
 
7. 이런 잣대로 한국 사회를 조망하면 한국의 경제활동 인구 2,500만 명 중 10%~20%의 근로조건은 북한산 인수봉처럼 우뚝 솟아 있다. 또한 한국에서 사람 팔자는 노동의 질(직능, 직무, 성과, 능력)의 함수가 아니라 소속의 함수이다. 은행, 증권사 같은 수익성 좋은 회사, 현대차 같은 시장 지배적 대기업, 공공부문 등의 정식 직원이 되면 팔자가 피고, 민간중소기업, 하청기업 등에 들어가면 인생이 꼬인다. 130만 명가량의 공공부문은 2천만 명 이상의 민간부문에 비해 고용이 매우 안정적이고, 임금도 높다. 당연히 고용비중이 클 수가 없다. 대우차,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 한때 잘나갔지만,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로 존망의 기로에 선 회사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 예외 없이 ‘해고는 살인이다’는 단말마가 터져 나온다. 인수봉에서 추락하니 얼마나 충격이 커겠는가? 복지 매트리스가 아무리 두터워도 이 큰 낙차를 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한번 추락한 사람은 대체로 다시는 인수봉에 올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이 원청대기업 구조조정 인원의 몇 배수가 되는 하청중소기업의 구조조정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의 평소 근로조건이 원청의 절반도 안 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은 소수의 좋은 회사와 대다수의 보통 회사 간에도, 고숙련・전문 직능과 저숙련・단순 직능 간에도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공공부문의 고용과 임금이 민간중소기업부문에 비해 결코 높지 않기에 공공부문 고용 비중이 크다. 격차가 크지 않으면 유사시 구조조정이 어렵지 않다. 기업들도 호황기나 잘 나갈 때 채용을 겁내지 않는다. 노동을 몰아내는 고가의 기계 도입이나 외주하청화에도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당연히 대기업 고용 비중이 크다. 이 모든 것은 연대임금제, 직무직능급제(공평임금제) 등 산업차원의 동일노동-동일임금과 노동시간단축과 기업 복지가 아닌 산업복지나 국가복지를 추구해 온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유로 말하면 선진국의 고용임금 체계가 서울 남산이라면, 한국은 북한산 인수봉이다. 선진국이 엎어놓은 접시 모양이라면, 한국은 엎어놓은 맥주 컵이다. 남산 혹은 엎어놓은 접시는 그 위가 넓고, 높이는 낮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다. 하산이나 추락을 걱정하지 않는다. 물론 남산에도 남산 타워가 있다. 사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한 자리다. 청년, 민간중소기업 직원 등 성 밖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사다리는 교육시험 사다리 외에는 거의 없다. 교육시험 사다리의 승자(공무원, 교수, 변호사 등)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한국만큼 큰 나라가 없다. 한국 교육 문제와 중소기업 인재 기근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의 교육이 아니라 획일적인 교육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선 캠프에 득실대는 교수, 변호사 등이야 말로 바로 교육시험 사다리의 승자다. 교사, 시간강사,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명백히 특권(경제적 지대)을 깔고 앉아 있는 성 안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의 주요 (작은) 불만의 하나가 정치권을 통해 성 밖 사람이 밀고 들어오는 낙하산 인사다. 낙하산 인사가 없으면 그 자리는 자신들의 차지니까! 그래서 낙하산 인사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관료 및 공공부문에 대한 인사권은 민주적 통제 내지 성 밖 사람의 목소리 반영의 수단으로 그 취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일인데, 그것을 백안시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짜 중요한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사내 하청 포함)의 격차가 핵심이 아니라, 거의 가치가 동일한 노동을 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장기근속자와 신참자, 정교수와 시간강사 등의 과도한 격차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안철수도, 문재인도, 노조도, 진보도 이것이 진짜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문제를 인식해도 해결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은데, 이 명백하고 심각한 모순부조리를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않으니...... 내가 누가 대통령 되든 1~2년 안에 정치 위기--이게 다 ***대통령과 여당 때문이니 선거 때 대량 살처분하자--가 온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8. 10.7 선언문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간판 상품으로 삼는 정치와 정치 혁신에 대한 생각이다. 안철수는 출마선언문에서도 '정치혁신'을 강조했다. 나 역시 안철수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기대했다.
 
출마선언문에서는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문제 삼았다. 출마선언문이고, 대중성을 고려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추석 전에 후속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없었다. 내가 모르는 심모원려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10.7 선언문의 정치 혁신 관련 언급을 보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안철수는 대한민국 정치가 왜,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선거운동을 하러 바닥을 훑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싸우지 좀 말라’는 것이다. 언론에서 정치권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충고는 당리당략에 사로잡히지 말고, 사리사욕을 물리치고 국리민복을 위해 힘쓰라는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 공히 가장 많이 지적하는 문제는 대통령의 권능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부정부패였고, 10~20여 년 전에는 지역주의였던 것 같다)
 
안철수는 이런 증상(불만), 즉 낡은 정치의 원인을 정치인의 이권 추구 성향(복잡한 이해관계)과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정치인은 모든 이권과 단절해야 한단다. 공직자의 독직과 부패에 대한 처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단다. 대통령은 더 낮아지고, 국회는 특권을 버려야 한단다. 국민이 제일 위에 계시고, 그 다음이 국회, 제일 낮은 곳에 대통령과 정부가 있단다. 대통령 한 사람이나, 정권에 따라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겠단다.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공비처를 신설하고, 의회의 동의, 추천 항목을 늘리겠단다. 자신은 낡은 정치의 산실인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지 않단다. 빚진 게 없단다. 공기업 감사를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단다. 선거 도와줬다고 공직 나눠주지 않겠단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하는 자리를 1/10 이하로 줄이겠단다.
 
물론 맞는 말, 필요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정치의 혁신을 가로막는 주된 질곡 내지 대립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
 
솔직히 이전에는 '(주변에 생각 깊은 참모들도 좀 있는데) 설마 안철수가 그렇게까지 한국의 저질,부실 정치에 대해 피상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아닐거야' 하고 생각했다. 솟구쳐 오르는 의구심에 도리질을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주적은 관료와 이익집단을 제대로 리드하지 못하고, 시대적 요구에 맞춰 제도와 정책을 업그레이드 하지 못하는 부실한 정치다. 그래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관주주의 국가처럼 되었다. 관료 마피아의 뿌리도, 이권정치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부실한 정치는 정치집단과 지식사회의 국가경영 노하우 및 정보 부족과 용기/강단(소명의식) 부족이 근인이고, 근본원인에는 제도적 결함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한겨레 칼럼 글을 대신한다.
 
‘왜 ‘분열과 증오의 정치’가 질기게 이어질까? 안철수의 말대로 ‘선거 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자행해서?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계속 바꿔도 정치가 별무신통이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중략)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가 결합하여 영호남에서는 두 유력 정당의 정치 독점이 뿌리 내린 지 오래다. 이와 더불어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제와 전쟁, 분단, 독재가 낳은 공포와 혐오가 가세하면서 두 당의 정치독점 현상이 전국화되어버렸다. 정치적 선택지가 두 당 외에는 사실상 없고, 낙선자의 표는 사실상 사표가 되다 보니, 실정에 대한 응징과 변화를 바라는 표심이 두 정당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해왔다.
 
물론 여기에는 충청에 기반을 두었던 당과 특정 계층 및 이념에 기반을 두었던 당의 간판 인물과 이념•정책적 부실도 일조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못하면, 아니 못하게 만들면 자동으로 승자가 되는 시스템, 승자가 행사하는 너무 많은 자의적 권능(국가폭력•규제•재정•자리 등), 소선거구제가 주조한 ‘땅개 정치인’의 협소한 안목, 뒤틀린 역사가 각인시킨 공포와 혐오 등이 분열, 증오, 무개념 정치의 뿌리이자 안철수 현상의 뿌리일 것이다.(중략) 그런데 저질 정치, 부실 정치의 주요 요인임에도 잘 거론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부실한 정치 콘텐츠다. 양극화, 일자리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부실하다는 얘기다. 교수, 언론인, 직업관료 등 지식사회가 비방을 가지고 있는데, 정치집단이 알아먹지 못해서 문제라면 해결은 쉽다. 그러나 양극화, 일자리,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해법 등을 찬찬히 뜯어보면 정치집단에 훈수하는 지식사회 자체가 혼미하고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폴리칼럼니스트)
(폴리뉴스, 201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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