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정치 약화가 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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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0-29 14:22 조회21,3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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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교육·정치·일자리·양극화 등 핵심 현안에 대한 문제 정의, 문제 구조, 핵심 원인 파악이 잘못되어 많은 시행착오를 범해 왔다. 입시 과열과 정치 불신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치 혁신은 2012년 대선판의 핵심 화두다. 안철수의 무소속 출마의 명분이자, 야권 후보 단일화의 근거다. 안철수는 출마선언문에서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책비전 선언문에서는 국회의 권능 강화(국회의 사전 동의·추천 사항 늘리기)와 대통령의 권능 축소(공기업 감사 논공행상 반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10분의 1 축소 등) 등을 공약했다. 10월17일 세종대 강연에서는 강제당론 폐기, 공천권 국민 환원 등을,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는 “국민은 서로 싸우고 나눠 먹는 부패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국회의원 정수 200명으로 감축,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중앙당의 폐지 혹은 축소’ 등을 제안했다. 요컨대 안철수가 제시한 정치 혁신안의 기조는, 문제는 못 풀면서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의 숫자·유지비용·개입범위·특권 등을 줄이자는 것이다.
사실 정치에 대한 이런 생각, 즉 비용 줄이기(효율화), 관료·전문가·지방정치 영역에 대한 정치 혹은 중앙정치의 개입 막기(약화), 개방화 등은 택시 안에서, 막걸리 집에서, 인터넷 댓글 등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당연히 일리 있는 불만과 해법이 없을 리 있겠는가? 하지만 정치도 휴대전화·컴퓨터 못지않게 복잡한 시스템이기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문제정의와 해결방안 등이 핵심을 짚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도대체 한국 정치는 무엇이 진짜 문제고, 진짜 해결책인가? 정치는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나?
21세기를 전후한 한국 사회는 1953년, 1961년, 1987년, 1997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질서(철학·가치·법·제도·문화·리더십)가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과 격렬히 충돌하고 있다. 유효기간이 다한 낡은 질서와 변화한 환경이 충돌하는 시기에는 규정, 선례, 예산, 권한 범위 등에 매일 수밖에 없는 기존 질서의 충실한 집행자인 관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이자 민의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정치가 나라의 명운을 가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는 관료를 잘 통솔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해야 하고, 각종 이익집단에 대해 강건해야 한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정치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고 개입 범위를 축소시키겠다는 것은 방향 착오다. 한국 정치의 최대 오점처럼 여겨지는 ‘국회 쌈박질’의 뿌리도 사람이나 문화가 아니라 제도 문제가 압도적이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중심제, 지역주의가 맞물려서 만들어진 보수·진보 양당제는 분단·휴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분단은 1945~53년 당시의 보수·진보 간 전쟁의 결과이고, 그 뒤로 환골탈태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과거의 철학과 가치, 정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이 총칼만 안 든 전쟁으로 치닫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통령이 통솔할 관료에게 개인·기업·지역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너무 많은 자의적 권능(규제·처벌·국토계획·예산할당권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식민통치, 전쟁, 분단, 개발독재의 후과다. 세계 최강의 검찰권은 그중 하나다. 그러므로 정치 혁신의 관건은 수명이 다한 헌법과 선거제도를 개혁하여 유력한 4~6개 정당의 생산적 경쟁체제를 정립하고, 제왕적 관료의 권능을 분산한 뒤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한겨레, 2012. 10. 24.)
정치 혁신은 2012년 대선판의 핵심 화두다. 안철수의 무소속 출마의 명분이자, 야권 후보 단일화의 근거다. 안철수는 출마선언문에서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책비전 선언문에서는 국회의 권능 강화(국회의 사전 동의·추천 사항 늘리기)와 대통령의 권능 축소(공기업 감사 논공행상 반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10분의 1 축소 등) 등을 공약했다. 10월17일 세종대 강연에서는 강제당론 폐기, 공천권 국민 환원 등을, 10월23일 인하대 강연에서는 “국민은 서로 싸우고 나눠 먹는 부패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국회의원 정수 200명으로 감축,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중앙당의 폐지 혹은 축소’ 등을 제안했다. 요컨대 안철수가 제시한 정치 혁신안의 기조는, 문제는 못 풀면서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의 숫자·유지비용·개입범위·특권 등을 줄이자는 것이다.
사실 정치에 대한 이런 생각, 즉 비용 줄이기(효율화), 관료·전문가·지방정치 영역에 대한 정치 혹은 중앙정치의 개입 막기(약화), 개방화 등은 택시 안에서, 막걸리 집에서, 인터넷 댓글 등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당연히 일리 있는 불만과 해법이 없을 리 있겠는가? 하지만 정치도 휴대전화·컴퓨터 못지않게 복잡한 시스템이기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문제정의와 해결방안 등이 핵심을 짚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도대체 한국 정치는 무엇이 진짜 문제고, 진짜 해결책인가? 정치는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나?
21세기를 전후한 한국 사회는 1953년, 1961년, 1987년, 1997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질서(철학·가치·법·제도·문화·리더십)가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과 격렬히 충돌하고 있다. 유효기간이 다한 낡은 질서와 변화한 환경이 충돌하는 시기에는 규정, 선례, 예산, 권한 범위 등에 매일 수밖에 없는 기존 질서의 충실한 집행자인 관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이자 민의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정치가 나라의 명운을 가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는 관료를 잘 통솔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해야 하고, 각종 이익집단에 대해 강건해야 한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정치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고 개입 범위를 축소시키겠다는 것은 방향 착오다. 한국 정치의 최대 오점처럼 여겨지는 ‘국회 쌈박질’의 뿌리도 사람이나 문화가 아니라 제도 문제가 압도적이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도,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중심제, 지역주의가 맞물려서 만들어진 보수·진보 양당제는 분단·휴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분단은 1945~53년 당시의 보수·진보 간 전쟁의 결과이고, 그 뒤로 환골탈태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과거의 철학과 가치, 정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이 총칼만 안 든 전쟁으로 치닫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통령이 통솔할 관료에게 개인·기업·지역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너무 많은 자의적 권능(규제·처벌·국토계획·예산할당권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식민통치, 전쟁, 분단, 개발독재의 후과다. 세계 최강의 검찰권은 그중 하나다. 그러므로 정치 혁신의 관건은 수명이 다한 헌법과 선거제도를 개혁하여 유력한 4~6개 정당의 생산적 경쟁체제를 정립하고, 제왕적 관료의 권능을 분산한 뒤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한겨레,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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