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이제 제2의 민주화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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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12-24 15:58 조회23,43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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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이 높으면 진보개혁 진영에 유리하다는 통념마저도 이젠 깨졌다. 목표치를 넘는 75.8%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야권연대의 문재인 후보는 패했다. 그것도 상당히 큰 차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무엇보다 인구 구성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 성향이 뚜렷한 5060세대의 인구비중은 10년 전엔 29.3%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0.0%로 급증했다. 반면 진보성이 강한 2030세대는 48.3%에서 38.3%로 크게 감소했다. 저출산·노령화 시대에서 이러한 방향으로의 인구비 격차는 계속 더 벌어질 것이다. 게다가 5060세대의 투표율은 2030세대에 비해 월등히 높다. 다른 조건에 큰 변화가 없다면, 보수-진보의 양자대결은 보수의 승리로 끝나기 마련이라는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는 갈수록 공고해질 것이다.
민주당은 이 보수 우위 구조를 객관적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 단독과반을 차지하거나 단독집권을 꿈꾸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심지어는 범진보연대를 구성해 보수에 승리할 것을 기대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연대와 연합의 정치를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연대의 지평을 중도보수로까지 확장하고 그들과의 연합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에 걸림돌이 될 뿐인 수구보수의 장기집권을 막을 수 있고, 민주당이 살 길도 열린다.
민주당은 우선 다음 세 가지 일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첫째, 중도보수층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도와야 한다. 마침 ‘안철수 세력’의 부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 등장하면 그것은 중도보수층의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잘만 하면 새누리당 안팎의 개혁적 보수 인사들도 합류할 수 있다. 민주당 구성원의 일부도 그리 갈 수 있다. 이 모든 걸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둘째, 튼실한 진보정당(들)이 바로 설 수 있는 여건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 어차피 민주당이 대표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과 이익집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들이 더욱 잘 대변할 수 있는 이익과 선호는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진보층의 정치세력화가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셋째, 민주당 스스로는 명실상부한 중도진보 정당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삼은 강령만 보면, 민주당은 유럽의 어느 사민주의 정당이나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에도 뒤지지 않을 어엿한 중도진보 정당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여전히 인물과 지역정당의 한계에 갇혀 있다. 거기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연합정치의 확대 및 강화를 주도할 수 있다.
진보와 중도에 걸쳐 있는 이 3대 정치세력이 민주당을 중심에 두고 정립(鼎立)할 경우 연합정치의 제도화 작업은 순항할 수 있다. 그것은 이들 3자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연대’ 구축으로 시작될 것이다.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와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단독집권 능력이 없는 3자 모두에게 커다란 이익이 된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예컨대, 중도보수층을 아우를 안철수 신당은 20%만 득표하더라도 60개의 국회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진보정당은 득표율 10%로 30석, 그리고 중도진보인 민주당은 득표율 30%로 90석을 차지할 수 있다. 결선투표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할 경우, 이 연대세력의 공동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 대통령은 3자 연립정부의 수반으로서 국회 절반을 훌쩍 넘는 총 180석의 지지를 받아가며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갈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민주당은 단독집권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 현실적 대안인 3자 연대의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2016년 총선까지 3자 협력과 연대의 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최선을 다해 진보 및 중도보수 세력 등과 연대해 ‘제2의 민주화운동’을 벌여야 한다. 1987년 체제는 승자 독식 민주주의 체제다.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의 정치 참여가 동등하고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합의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정책과 가치 중심의 온건다당제가 확립되도록 해야 하며, 거기에 결선투표제를 추가함으로써 연립정부가 정상 상태인 권력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연합정치가 제도화될 수 있도록 한국 민주주의의 판을 전혀 새롭게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새 민주주의’가 왜 필요하며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범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개혁여론에 힘입어 3자 연대세력이 총선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둘 수 있고, 그래야 국회의원 및 대통령 선거법의 개정도 가능하다. 앞으로 3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열심히만 하면 개혁여론을 동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번만큼은 부디 최선을 다하자.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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