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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보정당 외면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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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7-06 11:29 조회27,1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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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외면받는 이유

소위 진보정당들은 하나같이 노동자·민중·민족 편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만이 극심한 양극화, 과도한 경쟁, 고질적인 일자리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보수 편향의 언론 환경과 국민의 무지가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심각한 착각이다.

 그들의 착각은 교사, 공무원, 은행원, 자동차 조립공,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 등 선망받는 직장의 연봉이 1인당 국민소득의 몇 배쯤 되는지를 따져보면 단박에 깨진다. 한국은 경제활동 인구 2500만 명 중 10~20%의 근로조건이 북한산 인수봉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은행·증권사 같은 수익성 좋은 회사, 현대차 같은 시장 지배적 대기업, 공공부문의 정식 직원이 되면 팔자가 피고 중소기업·하청기업에 들어가면 인생이 꼬인다. 130만 명가량의 공공부문은 2000만 명 이상의 민간부문에 비해 고용이 매우 안정적이고, 임금도 높다.


 대우차·쌍용차·한진중공업 등 한때 잘나갔지만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로 존망의 갈림길에 선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예외 없이 ‘해고는 살인이다’는 단말마가 터져 나온다. 인수봉에서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청대기업 구조조정 인원의 몇 배수를 구조조정하는 하청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사회적 약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선진국은 소수의 좋은 회사와 대다수의 보통 회사 간에, 고숙련 전문 직능과 저숙련 단순 직능 간에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공공부문의 고용과 임금이 민간부문에 비해 결코 높지 않기에 공공부문 고용 비중이 크다. 격차가 크지 않으면 유사시 구조조정이 어렵지 않다. 기업들도 잘나갈 때 채용을 겁내지 않는다. 외주하청화에도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당연히 대기업 고용 비중이 크다. 이 모든 것은 직무·직능급제(성과·능력주의), 연대임금제, 산업 차원의 동일노동-동일임금 등을 중시해 온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의 노력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1인당 국민소득의 창으로 보면 한국의 고용임금 체계가 북한산 인수봉이라면 선진국은 서울 남산이다. 선진국이 엎어놓은 접시 모양이라면, 한국은 엎어놓은 맥주 컵 모양이다. 좋은 일자리 혹은 정상(正常)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너무 높고, 정상은 너무 좁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줄이나 사다리도 부족하다. 그나마 교육시험 사다리 외에는 없다. 살인적인 경쟁은 필연이다. 용케 올라가도 불안하다. 매트리스(사회안전망)가 얇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엄청난 낙차 때문이다.


 당연히 인수봉에서의 구조조정은 예외 없이 극렬한 저항을 부르기에 실적이 좋은 회사도 고용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노동자들은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야 하기에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한다. 당연히 임금근로자 비중이 낮고, 고용률도 낮다. 그런데 한국의 힘센 노조와 진보정당은 노동의 질에 상응하는 처우 개념도, 우리의 생산력(1인당 국민소득) 수준에 상응하는 처우 개념도 없기에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인수봉을 더 높이려고 노력한다. 각종 규제 등을 통해 한번 올라간 사람은 영원히(정년까지) 거기에 머물게 한다.



 그러므로 저출산 고령화와 그 핵심 원인인 출산과 결혼 연기, 기피, 불능 사태를 혁파하려면 좁고 높은 인수봉을 깎아 넓고 낮은 남산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연대임금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자제, 최저임금 인상, 누진소득세제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면서 노동의 질(성과·능력)과 우리의 생산력 수준과 새로운 경제산업 환경에 조응하도록 사회경제적 격차를 합리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경제사회적 활력이 생기고, 임금근로자 비율과 고용률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다.

 이게 진보정당이 할 일이다. 이런 일을 소홀히 하기에 진보정당은 외면받는 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중앙일보 2012.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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