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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우리 기쁜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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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06 11:22 조회23,1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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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이 기쁘고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현대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던져져 방황이나 좌절, 고통을 겪는 것이 청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문열의 연작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서 대학시절의 고뇌와 사랑을 그린 <우리 기쁜 젊은 날>에도 이 같은 청춘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을 법하다.

1980년대 초에 출간된 이 오래된 소설을 새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에 열린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을 보면서다. 5·16과 유신체제에 대한 여권 유력후보의 해괴한 발언을 듣다보니 불현듯 유신시대 대학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자유의 이념과 극도의 억압이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작품의 주인공이 느낀 것처럼 환멸과 절망을 불러일으키던 시기였다. 군대나 감옥으로 끌려가는 친구들이 속출하던 그 시절 필자에게는 학과 공부를 작파하다시피 하고 학교 신문기자 일에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세 가지 장면들.


장면 하나. 어느 날 대학신문사가 자리잡은 중앙도서관 6층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학생들이 기습시위를 하고 전투경찰이 이들을 체포하려고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그때 현장을 지켜보던 총장이 잔디 쪽에 있는 학생 하나를 붙잡아 경찰에 넘기는 것이 아닌가! 당시 경찰은 캠퍼스에 진을 치고 상주하며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장면 둘. 신문사 데스크에서 혼자 기사검토를 하던 어느 날 오후, 편집실을 불시에 방문한 중앙정보부 요원이 필자 옆 안락의자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때 방안을 날아다니던 나방인지 파리인지가 그의 옷깃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는 주머니에서 천천히 꺼낸 라이터로 태연자약하게 그 벌레를 태워죽이며 느물거렸다. 불쾌하고 섬뜩했지만 어쩌지 못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학본부 총장실 옆에 파견소를 두고 있었다.


장면 셋. 유신정권이 발동한 긴급조치로 표현의 자유는 극도로 제한됐다. 긴급조치를 위반한 사람에 대한 보도도 긴급조치 위반이었다. 친구의 제적 소식조차 전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한 후배기자 하나가 사직원을 제출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따라간 필자의 만류에 울음을 참지 못하던 그가 갑자기 허둥댔다. 우리는 울다가 눈에서 떨어져나간 콘택트렌즈를 찾느라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시멘트 바닥을 한참 기어다녀야 했다.


5·16을 쿠데타가 아니라 구국의 혁명이라고 주장해온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TV토론에서도 이를 되풀이하면서 유신체제까지 “역사의 판단에 맡길 일”이라며 옹호했다. 유신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해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족처럼 덧붙이면서. 산업화의 공적을 내세워 군사정변을 미화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헌법 기능을 정지시키고 긴급조치와 위수령을 남발하면서 종신집권의 야욕을 채우려 한 유신체제에 무슨 역사의 판단이 새로 필요한가?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사과에 진실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유신체제 자체를 전혀 문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직접 희생자들에게는 말치레의 사과라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억압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조차 없다. 그 시절 ‘영부인’으로 살던 사람의 눈에 도서관 건물 앞에서 울고 있는 젊은 영혼의 아픔이 들어올 리 있겠는가? 이 퇴행적인 역사의식이 현재를 보는 시각과 직결돼 있음에도 더 이상 과거를 헤집지 말고 미래로 가자는 외침은 공허할 따름이다.


얼마 전 필자가 일하던 대학신문사가 창간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퇴기’(퇴직기자)들을 초청했다. 오랜만의 해후에서,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선배는 고인이 되어 볼 수 없었지만, 그 선배와 치고박고 싸우며 젊음의 울분을 토하던 동료기자들이 모여 지난 시절을 잠시 추억했다. 물론 젊음은 그 모든 상처를 딛고도 늘 그리운 법이다. 그러하기에 이문열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픔이요 시련이었으되 이제는 다만 애틋함이요 그리움일 뿐인, 아, 그 기쁜 우리 젊은 날.”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경향신문, 201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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