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 정치적 냉소 다스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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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13 14:47 조회25,7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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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모았던 TV 드라마 '추적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한오그룹 회장 서동환(박근형 분)이었다. 이 드라마의 뛰어난 점은 한 정의로운 형사 백홍석이 재벌과 국가 기구가 연대한 거대한 권력 시스템의 부정의와 싸워 승리하는 스토리에 있다기보다 권력자들의 내면 풍경의 생생한 묘사에 있다. 서동환이라는 인물은 특히 매력적이었다. 악인임에도 그의 말이 지닌 설득력은 대단했다. 일간지 사회부기자이며 소시민의 편에 선 딸에게 그가 말하는 대사 하나가 특히 기억할 만하다.
실리적이지 않은 투표가 민주주의 위기 초래
"니는 동윤(대통령 후보이자 서동환의 사위)이가 국민들을 속였다고 생각하나. 동윤이 선거공약을 보래이. 다 좋은 소리, 국민들 누구한테나 이득이 되는 얘기만 있다. 국민들은 지한테 이득이 되는 사람을 지지하면서도 그걸 솔직히 드러내면 챙피하니까, 개혁의 기수니 새로운 정치니 하는 구호를 지지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뿐인 기라. 동윤이가 국민을 속인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지 스스로를 속이는 기라."
그의 말이 맞다면 정치인들이 강변하는 정의론과 대의론은 모두 헛말이란 뜻인가. 그렇지 않다. 서동환은 그런 언사들이야말로 유권자들이 자기기만을 위해 필요로 하는 수사(修辭)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중이다.
예리해 보이지만 그의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서동환은 지금 정치행위, 그리고 선거라는 절차 자체를 은근히 경멸하고 있다. 그는 재벌 총수이지만 현실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속류 유물론자의 논리로 정치의 기만성을 조롱하며 정치 냉소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유권자들의 실리적 투표행위인가, 아니면 자기기만인가. 아니면 양쪽 다인가.
당겨 말하면, 문제는 없다. 굳이 있다면 자기기만이지만, 약간의 자기기만도 없이 투명하고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건 보통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하다. 실리적 투표 행위는 극히 정당하다. 대기업 임원이 보수에, 가난한 노동자가 진보에 투표하는 행위를 어떤 대의를 내세우며 비난할 것인가. 오히려 문제는 실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자신의 실리를 배반하는 선택이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그런데 이런 멍청한 선택이 지구촌 어디서나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토마스 프랭크는 저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이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진다.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은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공업도시로 만드는… 후보자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낸다."
사람들은 왜 이런 멍청한 선택을 하는가. 토마스 프랭크는 미국의 선거과정을 분석하며 공화당 매파의 정교한 여론조작술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예컨대 낙태를 이슈화해 민주당에 반윤리적, 반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정작 중요한 실질적 이슈를 외면하게 하는 것이다.
서동환의 말은 권력자들의 기만을 유권자들의 자기기만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우리는 그의 달변에 넘어가면 안 된다.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간단하다. 우리 자신의 실리를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실리라는 말을 내일 당장 생길 돈 몇푼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살아 있는 동안 덜 불행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바로 투표행위의 기준이 되는 실리다.
정치에 열광 않는 것이 냉소 극복의 열쇠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첫째, 국가, 민족, 이념을 동원하는 20세기적 선동의 정치언어를 경계해야 한다. 이런 단어를 내세우는 비장한 언사들일수록 사기일 확률이 높다. 둘째, 도덕적 이슈를 부차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정치는 도덕성 오디션이 아니다.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이 아니라면 누가, 혹은 어느 집단이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가 우선이다.
셋째가 가장 중요하다. 최상의 정치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행복의 능력은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적 능력에 속하며 정치는 거의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치적 열광은 짧은 기간에 대개 실망과 좌절로 변하고 결국 정치적 냉소의 모태가 된다. 정치는 열광할 만한 가치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치적 냉소를 다스리는 열쇠다.
허문영 영화평론가
(부산일보,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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