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역사전쟁의 무기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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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8-22 12:06 조회30,8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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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여러 ‘전시회’가 있었다. 여수엑스포나 런던올림픽도 전시회의 일종이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전시 행사이다. 전시회는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역사는 쓰여서 읽히는 것만이 아니고 전시되고 이미지화되기도 한다. 전시회는 역사와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박람회나 박물관의 전시는 교육의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에 정치성이 들어 있다.
지난주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현장에서 불이 났다. 당장 사람이 피해를 보았고 나라의 체면도 손상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전시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경복궁 일대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나라의 얼굴에 해당할 것이다. 경복궁 가까운 곳이 화마의 먹구름에 싸인 모습을 보니, “나라가 만년 되고 큰 복 받기를”(君子萬年, 介爾景福) 바라는 기운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착잡했다.
경복궁 일대는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경복궁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위치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경복궁 앞에 일본총독부 청사가 들어서고 해방 후 그 건물이 정부청사가 되었다가 다시 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과거 총독부·중앙청·박물관으로 쓰였던 건물은 철거되고 경복궁에는 고궁박물관이 남았다. 미술관은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갔다가 과천에 신축 이전했다가 다시 서울관을 짓고 있는 중이다. 부수고 짓고 이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정작 “우리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묻지 못하고 있다.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대만은 문화재 전시를 통해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벌인 바 있다. 청나라가 멸망하자 왕실의 모든 재산은 중화민국 정부로 이관되었고 왕실 문화재를 기초로 고궁박물원이 설립되었다. 1925년 베이징의 고궁에서 소장품이 민간에 최초로 공개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문화재를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일본에 승전한 후 문화재는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리게 되자 총 24만점의 중요 문화재를 대만으로 옮겼다. 당시 국민당은 병력 이동보다 문화재 수송을 우선했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는 ‘국보’를 통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대만은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박물관 전시를 보다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대만에 옮겨진 문화재는 타이중의 저장고에 보관되다가 마침 1965년 타이베이에 지어진 고궁박물원으로 옮겨 갔다. 1966년 대륙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은 문화재를 ‘보관’하는 곳에서 ‘전시’를 하는 장소로 전환하게 된다. 대만은 중국 대륙의 문화대혁명에 대결해 대만인이 중화문명의 일원이자 수호자임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고궁박물원은 대만인을 ‘중국 국민’으로 만드는 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정세 변화는 대만에 국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대만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가 본격 제시되었다. 이후 대만 정치권에서는 국민당과 민진당이 경쟁하고 있고, 전시회에서도 자신들이 중화문명인가 해양대만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대만은 토착 유물이 아니라 인접 국가의 최고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을 자랑할 일인가 아니면 대만의 역사와 전통을 새로이 보여주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대륙 중국이 조국인가 아니면 타국인가 하는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 대륙도 전시를 국가 만들기에 적극 활용했다. 중요 문화재는 대만으로 옮겨갔으나 베이징의 고궁에는 700여개의 건축물과 100만점의 문화재가 남았다.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 10주년을 맞이해 톈안먼 광장 동쪽에 중국역사박물관을 건립했으며 그 이듬해 같은 건물에 중국혁명박물관을 개관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 자체가 국민을 만들고 국가를 견고하게 하는 전시의 공간이 되었다.
여름밤을 흥분시키는 올림픽도 대대적인 국가들의 전시회가 되고 있다. 물론 올림픽도 초기에는 교육혁신과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올림픽운동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독일을 공공연한 적으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교육에 반발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운동은 국가주의에 편승하면서 성공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국력을 결집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과시하는 매개체로 활용됐다. 런던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은 청년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국가의 대표로 경쟁하고 각국 국민들은 이에 열광했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죄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독도라는 보물을 ‘보관’만 할 게 아니라 ‘전시’ 이벤트도 한번 벌여 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일본 정부는 갖가지 보복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에게는 세력 결집의 호재가 되겠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모두에 경복(景福)이 되지 않을 일들이다. 치열했던 여름 더위가 가시고 나면 국가주의적 역사 전쟁의 소모적 흥분도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제학
(경향신문, 201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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